한 통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주일 설교를 하라는 전화였습니다. 그때가 지난 월요일 아침 8시 48분이었는데요. 제가 월요 큐티 모임을 가기 위해서 교회로 가던 길이었습니다. 그날따라 날씨가 얼마나 좋던지 하늘에 구름 한 점이 없고 더위가 삭 가시고 산들산들한 가을바람이 불어오는데 아침부터 기분이 너무 좋은 거예요. 그러니까 제가 딱 드는 생각이 '어디 놀러 가고 싶다.' 제가 가끔씩 자전거 타는 걸 좋아하는데 '이번 주간에는 자전거를 타고 탄천으로 나아가야겠다,' 이렇게 하면서 제가 너무 한 주간이 막 기대돼가지고 흥얼흥얼 노래를 부르면서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전화가 울리는 거예요. 한 주간 동안 주일 설교 준비로 이렇게 긴장하면서 사로잡혀 있을 걸 생각하니까 갑자기 가슴이 막 답답해지면서, 그때가 또 터널을 지나고 있을 때였는데 갑자기 막 공황이 올 것 같고 이 터널이 끝이 안 날 것 같고 그런 기분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큐티 본문을 다시 펼쳐봤습니다. 그날 월요일 큐티에 "율법서를 평생 자기 옆에 두고 읽어라,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아라"이 "평생"이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제가 아침에 분명히 큐티를 했는데 그때는 이 단어가 들어오지 않았는데, 이 전화를 받고 나니까 이게 막 나팔 소리처럼 들리는 거예요. 너무 신기하더라고요. 여러분, 하나님께서 저에게 왜 이러시는 걸까요? 하나님께서 저를 왜 이렇게 통제하시는 걸까요? 제가 범죄하게 될까 봐 그러시는 거죠. 한쪽으로 치우쳐서 애굽으로 떠내려갈까 봐 이러시는 겁니다. 딱 이렇게 큐티가 되더라고요.
여러분, 오늘 말씀의 제목은 <범죄하게 할까 함이니라>입니다. 혹시 오늘 여러분들의 삶이 광야에 내던져져 있거나 바벨론에 사로잡혀 있는 분들이 계십니까? 오늘은 결론부터 말씀드리고 시작합니다. 그 이유는 바로 우리가 <범죄하게 할까 함이니라>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 가지 사건으로 우리를 묶어놓으시고 통제하시는 이유는 범죄하는 우리를 죄에서 건지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구속적인 사랑 때문이라는 것을 오늘 다 깨달을 수 있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범죄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세 가지를 같이 한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먼저 "화평"을 선언해야 합니다
10절입니다.
네가 어떤 성읍으로 나아가서 치려 할 때에는 그 성읍에 먼저 화평을 선언하라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 군대의 전쟁 규례입니다. 전쟁 매뉴얼이죠. 우리가 군인도 아닌데 이걸 왜 알아야 하나. 아니요, 우리는 모두 군인입니다. 우리의 인생 자체가 전쟁이기 때문이에요. 여러분, 우리의 인생은 날마다 죄와 싸우는 영적 전쟁입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이 전쟁은 끝이 나지 않습니다. 휴전도 없어요. 은퇴도 없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 발을 붙이고 살아있는 동안 이 전쟁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것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오늘 우리는 이 전쟁 규례를 잘 숙지해야 합니다. 그래야 승리할 수 있어요.
자,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가장 먼저 뭘 해야 할까요? 작전 회의를 해야겠죠. 기습 작전을 펼칠지 아니면 돌격 앞으로 기세를 밀어붙일지. 그런데 오늘 하나님은 의외의 작전을 소개합니다. "먼저 화평을 선언하라"라고 하는 거예요. 그런데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 작전입니다. 지금 총칼을 들고 성읍을 치러 왔는데 다 와가지고 갑자기 화평을 선언하라는 거잖아요. 앞뒤가 안 맞는 것 같습니다. 이럴 거면 애초에 전쟁을 안 일으키면 될 것을 굳이 왜 성읍을 치러 왔냐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여기서 중요한 것 하나를 알게 됩니다. 이 영적 전쟁의 기본 원칙, "전쟁은 절대 피해서는 안 된다"입니다. 죄의 성읍을 앞에 두고 가만히 있거나 돌아가거나 하면 이게 더 큰 죄악이라는 것이에요. 여러분, 죄의 문제는 그냥 넘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회피한다고 없어지는 게 아니에요. 죄의 문제는 반드시 해결하고 넘어가야 진정한 화평이 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 공동체는 어떻게 합니까? 매일 죄를 보는 큐티를 합니다. 목장에서 내 죄를 오픈합니다. 죄패가 약재료가 되어서 죄인이 죄인을 살립니다. 이것이 화평케 되는 원리예요.
먼저 화평을 선언하라고 했는데, 이 화평은 히브리 원어로 뭐예요? 맞습니다. 샬롬(שָׁלוֹם)입니다. 샬롬은 우리가 잘 아는 대로 평안, 평화, 온전함 이렇게 번역하지만 사실 이 샬롬의 근원적인 뜻은 관계의 회복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무슨 말이겠습니까? 모든 화평은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에서 온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군대가 가나안을 정복하고 전쟁을 치러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 샬롬에 있습니다. 약속의 땅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땅입니다. 온전히 화평케 되는 땅이에요. 그러려면 그 땅에 죄가 있을 수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스라엘 군대는 가나안의 모든 죄의 성읍을 다 정복해야 하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저와 여러분들이 살고 있는 그곳이 약속의 땅 가나안입니다. 아멘. 매일 함께하는 가족이 있는 우리 집, 직장, 학교가 약속의 땅이에요. 여러분은 그곳에서 샬롬하고 계십니까?
우리 옆에 분들하고 한번 인사하겠어요? "샬롬!" 그런데 입으로는 샬롬 하는데 얼굴이 평안하지 않으신 분들이 계십니다. 왜 그럴까요? 화평을 선언하지 않고 전쟁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괜찮습니다. 기쁜 소식이 있기 때문이에요. 죄와 싸우는 전쟁에서 날마다 패배하여 죽을 상을 하고 있는 우리에게 화평을 주려고 오시는 분이 있습니다. 에베소서 2장 13절 14절인데요. 같이 한번 큰 목소리로 읽겠습니다.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화평이 누구입니까? 예수 그리스도. 여러분,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예수 그리스도를 선언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 삶에 적용한다면 어떻게 되겠어요? 예수님은 말씀이죠. 먼저 말씀을 선언하라는 것이에요. 하루를 시작할 때 가장 먼저 큐티를 하라는 겁니다.
그런데 큐티까지는 하겠다, 이거예요. 그런데 큐티만 한다고 다 화평케 된다는 게 또 아니라고 합니다. 이 화평을 받아들이고자 하는 결단이 필요하다고 해요. 11절 12절입니다.
11 그 성읍이 만일 화평하기로 회답하고 너를 향하여 성문을 열거든 그 모든 주민들에게 네게 조공을 바치고 너를 섬기게 할 것이요
12 만일 너와 화평하기를 거부하고 너를 대적하여 싸우려 하거든 너는 그 성읍을 에워쌀 것이며
여러분, 똑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화평의 말씀을 듣고도 성문을 여는 사람이 있고 성문을 열기를 거부하는 사람이 있다는 거예요. 똑같이 큐티를 해도 적용하는 사람이 있고 적용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자, 먼저 성문을 여는 사람은 어떻게 된다고 합니까? "조공을 바치고 너를 섬기게 할 것이요." 저는 이 부분이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이게 좀 이해가 안 됩니다. 지금 서로 평화 조약을 맺은 거잖아요. 그러면 동등한 관계로 서로 어깨를 나란히 해야 할 것 같은데 오늘 하나님은 조공을 바치고 섬기라고 하십니다. 파트너가 아니라 종이 되라고 하세요. 그래서 구속사는 인본적으로 해석하면 해석이 안 됩니다. 여러분, 화평은요 평등이 아니라 종이 되는 것입니다. 화평의 선언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내 인생의 주인을 나에서 예수님으로 바꾸는 것이고 그분의 다스림을 받는 것입니다. 여러분, 종이 된다고 하니까 숨이 막히고 자유를 다 빼앗긴 것 같으세요? 우리가 인생을 살면 살수록 내가 주인으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지옥인지 깨닫게 되는 게 우리의 인생입니다.
이어서 13절 14절입니다.
13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성읍을 네 손에 넘기시거든 너는 칼날로 그 안의 남자를 다 쳐죽이고
14 너는 오직 여자들과 유아들과 가축들과 성읍 가운데에 있는 모든 것을 너를 위하여 탈취물로 삼을 것이며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적군에게서 빼앗은 것을 먹을지니라
화평의 선언을 받아들이지 않는 자, 성문을 열지 않고 스스로 화평할 수 있다고 고집하는 자들은 어떻게 됩니까? 다 처죽임을 당한대요. 무섭죠. 갖고 있는 모든 것을 탈취당하고 다 빼앗긴다고 합니다. 여러분, 전적으로 타락한 죄인이 주인이 되면 다 죽는 거예요. 나만 죽는 것이 아니라 여자들과 유아들, 무엇입니까? 내 가족들이죠. 또 가축들, 내 재산입니다. 내 모든 재산을 다 빼앗긴다는 것입니다.
험악한 광야 40년을 경험하지 못한 이 세대들은 이런 말씀을 들어도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모세가 이렇게 재차 "들으라, 들으라" 하면서 이 신명기를 쓴 것이에요. 하지만 광야에서 불순종함으로 피 흘리는 이 지옥을 경험한 모세는 화평이 선언될 때 성문을 활짝 열고 종이 되는 것을 기뻐합니다. 아멘. 그래서 고난이 축복인 거예요.
제가 요즘에 계속 신명기를 큐티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희 아버지가 광야 40년을 채우시려나 보다. 제가 늘 간증하는 것이지만 저희 아버지는 교통사고로 식물인간이 되셨습니다. 그렇게 병상에 누워 계신지가 올해로 36년이 되셨어요. 지금 연세가 76이십니다. 건강한 사람도 이 연세가 되면 언제 돌아가셔도 이상하지 않으신데 36년을 움직이지도 않고 그냥 시체처럼 누워만 계셨는데 아직 몸의 장기가 상하지 않고 이렇게 살아 계신다는 거예요. 제가 한번 이렇게 위급한 상황이 돼가지고 너무 놀래가지고 아버지를 들쳐 업고 응급실을 간 적이 있어요. 의사분들이 다 모여가지고 저희 아버지를 보고 구경을 하시더라고요. "이런 상태로 36년을 살았다는 것은 기적이다"라고 이렇게 하시면서.
36년 전에 하나님께서는 아버지의 교통사고로 저희 집에 샬롬하고 찾아오셨습니다. 그때는 이것이 화평의 선언인 줄도 모르고. 교회는 다녔지만 제가 성문을 열지 않고 하루하루를 말씀 없이 내가 주인이 되어서 전쟁을 치르며 살았습니다. 어머니는 홀로 생계를 위해서 새벽부터 밤까지 일을 하셨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어머니도 극심한 스트레스로 갑상선 질환이 오셔서 갑상선을 떼내는 수술까지 하셨어요. 그때는 참 이게 갑상선 호르몬 문제인지도 모르고 우리 엄마는 왜 이렇게 예민하나, 왜 이렇게 화를 많이 내나 이러면서 제가 늘 예민하신 어머니의 감정 기복 때문에 혀에 칼을 물고 서로 상처되는 말을 주고받으면서 얼마나 큰 전쟁들을 치렀는지 모릅니다.
그런데요, 그렇게 몸이 힘든 거, 가난이 힘든 거, 이런 건 사실 힘든 게 아니었어요. 제가 가장 힘들었던 것은 거짓 화평으로 사는 거, 이게 제일 힘들었습니다. 교회를 가도 친구를 만나도 저의 속마음을 솔직하게 말할 곳이 없었습니다. 또 저희 아버지가 목사님이셨거든요. 목사님이셨던 아버지가 교통사고를 당한 것은 저주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 가린다고 어디 가서 편하게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현관문을 열면 대소변 냄새, 그 환자 냄새가 있어요. 그 냄새가 진동하는 저희 집이 늘 창피하고 숨겨야 했기 때문에 학교를 다니면서 저는 친구를 한 번도 집에 데리고 온 적이 없었습니다. 온통 기복적인 가치관으로 아버지의 사건이 말씀으로 해석이 안 되니까 교회에 다니고 찬양도 하고 기도도 하고 할 건 다 하는데도 뭔가 이 화평이 100%가 안 되는 거예요. 심지어 제가 주의 길을 가겠다고 신학교까지 갔는데도 사실 돌아보면 항상 1%, 2%의 부족한 거짓 화평 때문에 늘 마음이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지금은 제가 평안합니다. 지금은 100%의 샬롬을 누리고 있어요. 왜냐하면 구속사의 성문을 열었기 때문입니다. 팔복의 말씀으로 진정한 예수의 종, 말씀의 종으로 거듭났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기복의 화평을 선언하고 성품으로 전쟁하다가 죽을 뻔했는데, "그는 나보다 옳도다" 구속사의 성문을 여니까 조각난 퍼즐이 다 맞춰지는 것처럼 100%의 참된 화평이 찾아오더라는 것이에요.
적용 질문
여러분은 거짓 화평으로 죄와의 전쟁을 피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화평의 성문을 열지 않고 내가 주인으로 살다가 죽임을 당하거나 빼앗김을 당한 사건은 무엇입니까?
여전히 종이 되기 싫어서 말씀의 성문을 굳게 닫고 걸고 있는 빗장은 무엇입니까?
둘째, 하나도 살리지 말고 "진멸"해야 합니다
16절 17절입니다.
16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이 민족들의 성읍에서는 호흡 있는 자를 하나도 살리지 말지니
17 곧 헷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히위 족속과 여부스 족속을 네가 진멸하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명령하신 대로 하라
오늘 본문이 좀 무섭습니다. "하나도 살려놓지 말아라, 말살시켜라." 뭔가 조폭 영화에서나 나오는 대사 같습니다. 인자와 자비가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하시는 걸까요? 본문을 좀 더 자세히 보면 사실 이건 잔인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거룩한 이야기예요. "호흡이 있는 자는 하나도 살리지 말고 진멸하라"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진멸"이라고 번역된 단어는 원어로 "헤렘(חֵרֶם)"입니다. 샬롬처럼 꼭 기억해 두셨으면 좋겠어요. 이 헤렘이 오늘 너무 중요한데, 헤렘은 그냥 "죽이다"라는 뜻이 아닙니다. "헤렘"은 "여호와께 온전히 바쳐서 구별하다"라는 뜻이에요. 그러니까 진멸이 무슨 뜻입니까? 살인이나 학살이 아니라 봉헌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거예요.
그렇다면 여러분, 우리가 여기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싸워야 하는 이 영적 전쟁에서 죄를 진멸한다는 것은 싸움의 문제가 아니라 순종의 문제라는 거예요. 그래서 17절은 이어서 "진멸하되 내 하나님 여호와께서 내게 명령하신 대로 하라"고 말합니다. 순종이죠. 헤렘입니다. 그래서 죄를 진멸하는 우리의 영적 전쟁은 내가 싸우는 전쟁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싸우시는 전쟁입니다. 우리는 순종하기만 하면 되는 거예요. 이게 헤렘입니다.
역대하 20장 17절입니다.
이 전쟁에는 너희가 싸울 것이 없나니 대열을 이루고 서서 너희와 함께 한 여호와가 구원하는 것을 보라
우리가 잘 아는 찬양이 떠오르죠. "세상의 유혹 시험이 내게 몰려올 때에 나의 힘으로는 그것들 모두 이길 수 없네. 거대한 폭풍 가운데 위축된 나의 영혼 어찌할 바를 몰라 헤매이고 있을 때" 자, 이때 어떻게 해야 됩니까? 그다음 가사가 뭐예요? "주를 찬양 손을 들고 찬양,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여러분, 죄는요 죄를 안 짓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는지가 중요한 것입니다. 죄를 안 지으려고 애를 쓸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에 애를 쓰면 죄가 진멸된다는 거예요. 모세는 이걸 확실하게 경험했습니다. 여리고 성을 어떻게 무너뜨렸습니까? 칼과 창을 하나도 쓰지 않았어요. 그냥 하나님의 명령대로 성 주위를 돌았을 뿐이에요. 그런데 진짜로 무너졌습니다. 진멸되었어요. 이스라엘이 한 것은 순종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진멸할 때 하나도 살리지 말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이 "하나도"라는 단어를 그냥 지나치면 안 될 것 같아요. 하나만 남겨도 안 되고, 조금만 남겨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을까요? 18절에 그 이유가 나옵니다.
이는 그들이 그 신들에게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을 너희에게 가르쳐 본받게 하여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게 할까 함이니라
가증한 일을 너희에게 "가르친다"라고 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뭘 알 수 있어요? 죄는 배우는 것이구나. 죄는 어느 날 갑자기 짓는 게 아니라 배운 게 있어서 짓는다는 것입니다. 또 오늘 말씀의 제목이죠. "범죄하게 할까 함이니라." 동사의 형태가 어떻게 돼 있어요? 사역동사잖아요. "뭐뭐하게 하다", "범죄하게 하다"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범죄하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가 나를 범죄하게 만든다는 거예요.
여러분, 하나도 살리지 말라라고 이렇게 단호한 명령을 내리시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죄는 조금이라도 남아있으면 죄가 사람을 가르치고, 죄가 또 죄를 낳고, 그 죄가 또 가르치고, 또 낳고 낳고 낳고 한다는 것이에요. 죄는 지독한 전염성을 가지고 있는 강력한 영향력입니다. 여러분, 죄는 처음부터 크게 오지 않습니다. 아주 작게 와요. 아주 평범하게 옵니다. 우리의 죄에 대한 민감성이 어떻게 되는지 아세요? 처음에는 "에이, 저건 아니지"라고 합니다. 그런데 두 번, 세 번 듣고 보면 "그럴 수도 있겠는데" 해요. 그런데 또 네 번, 다섯 번, 여섯 번 보면 어떻게 돼요? 내가 이미 하고 있습니다.
한 여자 집사님께서 다급한 목소리로 저에게 전화를 주셨어요. "목사님, 제발 우리 남편 골프 좀 못 치게 해주세요." 이 남편분께서는 예전에 골프 모임에서 외도를 한 경력이 있으셨던 분이셨어요. 외도를 끊고 다시는 골프 안 치겠다고 약속을 하고 잘 지키셨는데 또 최근에 슬금슬금 택배로 골프웨어가 이렇게 오더라는 거예요. 그래서 그냥 다 찢어놨다고. 이런 가정 많으시죠? 보통 이럴 때 남편분들은 어떻게 얘기합니다? 하나같이 이렇게 얘기합니다. "아, 목사님 걱정 안 하셔도 된다고, 지금은 정말 운동으로 하는 거라고, 비즈니스 때문에 안 할 수는 없다고, 여자는 절대 안 만난다고." 그러면 또 제가 이해가 좀 될 것 같기도 한데, 오늘 말씀은 단호합니다. "하나도 살리지 말고 다 진멸하라." 그런 환경에서 죄를 안 지울 수 있다고 의지를 불태우는 것이 진멸이 아닙니다. 환경 자체를 아예 안 만드는 것이 오늘 진멸이라는 거예요.
우리가 죄를 진멸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을 오늘 성경은 이렇게 소개합니다. 골로새서 3장 5절입니다.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지체를 죽이라. 오늘은 죽이라는 말이 너무 많습니다. 죄를 진멸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내 지체를 죽이는 것, 내가 진멸당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가 진멸해야 하는 헷 족속, 아모리 족속, 가나안 족속이 누구겠습니까? 지금 옆에 앉아있는 분이 아니라는 거예요. 진멸의 대상은 바로 내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면 또 오해하시는 분들이 있어요. "그러면 난 이제부터 안목의 정욕을 진멸하기 위해서 스마트폰을 없애버리겠다, 산속으로 들어가서 기도만 하겠다." 이런 금욕주의로 적용하라는 게 아닙니다. 이건 또 행위구원인 것이죠. 여러분, 진멸은 헤렘입니다. 헤렘은 여호와께 구별하여 바치는 것이다. 헤렘은 거룩이에요. 그런데 전적으로 타락한 인간은 절대 헤렘을 할 수 있어요? 없어요? 없어요. 그래서 그 헤렘의 자리에 예수 그리스도가 오신 거예요. 죄를 완벽하게 진멸하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물과 피를 다 쏟으셨어요. 예수님은 자신을 완벽하게 진멸하셔서 우리의 모든 죄를 진멸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는 오직 말씀에 순종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 되면 되는 거예요. 종이 되면 되는 건데, 그것이 죄를 진멸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적용 질문
여러분은 하나도 남기지 않고 진멸해야 할 죄가 무엇입니까?
그 죄를 진멸하겠다고 내 주위의 가족들을 진멸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난 절대 빠지지 않을 수 있어"라고 의지를 불태우며 살짝 발을 들여놓은 죄의 환경은 무엇입니까?
셋째, "생명나무"는 살려둬야 합니다
19절입니다.
너희가 어떤 성읍을 오랫동안 에워싸고 그 성읍을 쳐서 점령하려 할 때에도 도끼를 둘러 그 곳의 나무를 찍어내지 말라 이는 너희가 먹을 것이 될 것임이니 찍지 말라 들의 수목이 사람이냐 너희가 어찌 그것을 에워싸겠느냐
우리가 지금까지 "하나도 남기지 말고 다 진멸해라, 죽여라"라고 들었는데 19절부터는 "찍어내지 말라, 살려두라"는 말씀이 두 번씩이나 나옵니다. 정리하자면 사람은 다 죽이되 나무는 죽이지 말라는 거예요. 사람이 나무보다도 못하다는 뜻일까요?
이 당시 고대 전쟁에서 성을 이렇게 포위하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주변의 과수원부터 모든 나무들을 다 밀어버리는 일이었어요. 왜냐하면 성 안에 있는 사람들의 전의를 꺾기 위해서입니다. 나무는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제공합니다. 나무 열매는 사람의 생명과 직결되어 있는 거예요. 그래서 그런 생명나무를 다 찍어내는 일은 성 안에 사람들의 소망을 다 끊어버리는 거예요. 그게 군사 전략입니다. 그런데 오늘 하나님은 그 나무를 찍어내지 말라는 거예요. 왜요? "이는 너희가 먹을 것이 될 것이니."
오늘 이 전쟁 규례의 본문을 숨가쁘게 보고 있는데 우리는 자동적으로 뭘 생각합니까? 승리를 생각합니다. 이기는 것만 생각해요. 그런데 하나님의 전쟁 목표는 좀 다른 것 같아요. 하나님은 이기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너희가 사는 것이 목표입니다. 전쟁이 끝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또 여기서 살아야 되는데, 그때는 뭘 먹고 살지, 이거부터 생각하시는 분이 우리 하나님이세요. 여러분, 이게 우리와 하나님의 차이입니다. 세속사와 구속사의 차이예요. 우리는 당장 눈앞에 이겨야 하는 것만 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영원히 살 것을 생각하세요.
기가 막힌 타이밍으로 부동산, 주식, 코인으로 들어가가지고 대박이 났습니다. 내가 세상을 다 이긴 것 같아요. 통장이 커지고 집도 넓어졌는데 내 마음은 점점 더 좁아지고 말라가더라고요. 죽어라 앞만 보면서 세상을 이기고 이기고 나서 보니까 배우자가 떠나가고 자녀들이 등을 돌리고 강아지만 남아있더라, 어떤 목자님의 나눔입니다.
19절 하반절은 또 이렇게 말합니다. "밭의 수목이 사람이냐 너희가 어찌 그것을 에워싸겠느냐." 나무가 사람이냐, 나무가 무슨 죄가 있느냐, 그런데 왜 나무를 죽이려고 하느냐. 하나님은 어떻게든 이 나무를 살리려고 합니다. 여러분, 나무는 성경에서 너무나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시고 제일 먼저 주신 사명이 뭐예요? 동산의 나무를 잘 경작하고 지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죄가 들어왔을 때 사람이 뭘 잃어버렸습니까? 생명나무를 잃어버렸어요. 그게 성경의 시작이었는데, 성경의 마지막이 어떻게 끝나는지 아세요? 요한계시록 22장에 다시 생명나무가 나옵니다. "그 나뭇잎이 만국을 치료하더라"라고 해요. 여러분, 성경은 나무로 시작해서 나무로 끝납니다. 그 사이에 십자가라는 나무도 있습니다. 지금 환경보호 캠페인을 하자는 게 아니에요. 하나님의 관심사는 온통 우리의 생명에 있다는 겁니다.
자, 오늘 본문의 마지막 20절입니다.
다만 과목이 아닌 수목은 찍어내어 너희와 싸우는 그 성읍을 치는 기구를 만들어 그 성읍을 함락시킬 때까지 쓸지니라
우리가 방금 본 19절에서는 나무를 찍지 말라고 하셨는데 또 20절에는 찍으라고 하세요. 어떤 나무를 찍어내라고 하십니까? 과실을 맺지 못하는 나무. 이제 수명을 다한 나무는 도끼로 찍어내도 된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맨 마지막에 아주 중요한 말이 있어요. "쓸지니라." 성읍을 함락시킬 때까지. 이 수명을 다한 나무를 전쟁 기구로 만들어서 쓸지니라는 거예요.
저는 오늘 이 "쓸지니라"가 너무 은혜가 되더라고요. 오늘 말씀의 결론도 바로 이 "쓸지니라"입니다. 범죄하던 우리가 화평을 선언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 되어서 일평생 죄를 진멸하며 살아가는 우리 인생의 목적이 다음 세대의 생명을 위해서 쓰임받다가 죽는 인생이 되는 것, 이것이 오늘 말씀의 결론이에요. 과실을 맺지 못하는 나무는 누구를 가리키겠습니까? 우리 부모 세대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과실을 맺는 나무는 누구를 가리키는 말이에요? 우리 다음 세대의 자녀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다음 세대를 위해서 찍힘을 당하는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다음 세대의 생명을 위해서 우리가 먼저 죽어야 하는 거예요. 이제 더 이상 생명나무인 우리 자녀를 찍어내는 일을 멈춰야 합니다.
어제 저녁에 판교 채플에서 학부모 기도회가 있었습니다. 저는 있는 줄은 알았지만 그냥 속으로 "어차피 그다음 날이 제가 설교니까 나는 참석 못 하겠구나" 하고 그냥 설교 준비만 이렇게 했어요. 그런데 원고를 다 썼는데 결론이 이 생명나무, 다음 세대인 거예요. 참석을 안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부랴부랴 기도회를 갔어요. 안 갔으면 큰일 날 뻔한 거죠. 한 학부모 집사님의 간증을 듣고 제가 너무나 눈물을 많이 흘렸습니다. 그래서 원고를 다 썼는데 다시 집에 와서 빼고 이분의 간증을 좀 소개해 드려야겠다 싶었습니다.
이분은 의사 남편을 만나서 고생 끝 행복 시작인 줄 아셨대요. 그런데 미숙아로 쌍둥이를 낳게 되었는데 쌍둥이 중에 한 아이가 뇌손상으로 자폐성 장애 진단을 받은 거예요. 저랑 너무 똑같은 상황이어서 제가 더 집중이 됐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도 쌍둥이를 낳았는데 저희도 이렇게 칠삭둥이로 2kg가 안 되는 미숙아를 수술로 급하게 낳았거든요. 그래서 그중에 한 아이가 ADHD로 약을 먹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집사님의 이야기가 더 가깝게 들렸어요. 이 자폐성 장애 진단을 받은 아이와 평생 살 걸 생각하니까 너무 두려워가지고 매일 자살을 생각했다고 합니다. 간증 일부분을 제가 그냥 읽어드리는 게 더 와닿으실 것 같아요.
"어떤 추운 겨울날 부부 목장 예배를 드리러 갔는데 아들이 지하주차장에서 차에서 내리지 않겠다고 버텼습니다. 야단을 치고 협박하고 힘으로 끌어당겼습니다. 꼼짝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깜깜한 차 안에서 아이에게 소리치고 울부짖다가 "하나님, 예배드리는 것까지 못하게 하시면 너무하신 거 아니에요?" 하며 반항하는 마음으로 큐티책을 폈습니다. 그런데 그날 말씀이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였습니다. 예배 자리에 올라가는 것보다 하나님이 주신 환경에 100% 순종하는 것을 더 기뻐하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깜깜한 차 안이 오늘 제게 주신 환경이라면 순종할게요. 이렇게 눈물로 고백하자마자 이 아들이 '올라가자' 했다는 거예요. 아들은 정말 제 거룩을 위해 수고하고 있었습니다. 자폐 아들은 이제 많이 컸어요. 100킬로가 넘는 큰 몸으로 자기 머리를 때리며 자해를 합니다. 보다 못해 맞기라도 하면 제 얼굴을 때립니다. 아들에게 맞고 아들을 세게 밀쳐 넘어뜨리고 함께 운 적도 많습니다. 그러면 하나님, '안락사라도 해주셔야 하는 거 아닌가요?' 하며 너무 고통스러워 무너지기도 했습니다. 오늘 말씀에 두려워하지 말라고 너와 함께하신다고 하십니다. '내가 너에게 아들을 잘 키워내라고 아들을 준 것이 아니다. 아들을 낫게 하라고 맡긴 것도 아니다. 너는 그저 피투성이라도 살아만 있으면 된다. 그리고 너 혼자가 아닌 나도 함께하고 있다'고 말씀해 주시니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평안과 기쁨을 누립니다. 공부 잘하고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복인 줄만 알았던 제 세상 가치관은 이 보석 아들이 아니었다면 절대 깨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들 덕분에 우리 가족 모두 예배에 딱 붙어있고 붙어가는 최고의 복을 누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생명나무가 우리를 살리는 게 맞습니다. 저 생명나무가 장애가 좀 있다고 찍어냈으면 어쩔 뻔했습니까. 집사님께서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평안과 기쁨을 누린다고 고백했어요. 이것이 진정한 샬롬, 화평의 선언인 것입니다. 저 아픈 아들이 없었다면 세상의 종으로 죄만 짓고 살다가 죽었을 인생입니다. 하지만 저 아들이 이 가정의 화평의 선물로 찾아와서 온 가족이 회개하고 천국을 누리게 된 줄 믿습니다.
저도 36년 동안 그렇게 시체처럼 누워있지만 살아계셔 주셔서, 그 식물인간 아버지 때문에 제가 참된 평안과 기쁨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를 광야 같은 환경에서 끝없는 전쟁을 일으키시는 이유는요 "우리가 범죄하게 할까 함이니라"인 줄 믿습니다. 우리를 죄 가운데서 구원하시는 하나님과 샬롬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적용 질문
여러분이 세상과 싸우는 전쟁의 목표는 승리입니까? 생명입니까?
지금 눈앞의 문제 때문에 도끼로 찍어내고 있는 미래의 생명나무는 무엇입니까?
다음 세대를 살리는 일에 쓰임받기 위해서 내가 찍어져야 할 적용은 무엇입니까?
오늘 말씀은 세 단어만 기억하시면 될 것 같아요. 화평, 진멸, 생명나무. 우리가 범죄하지 않으려면 먼저 화평을 선언하고 말씀의 종, 예수의 종이 되어야 합니다. 또 죄는 하나도 살리지 말고 다 진멸해야 합니다. 이것은 순종의 문제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내가 찍혀지는 나무가 되어서 다음 세대의 생명나무를 살리는 데 쓰임받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