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 절반이 이제 지났어요. 오늘은요 맥추 감사절이에요. 사는 건 늘 힘들어요. 그래도 오늘 주님께 감사한 것 하나씩 꼭 생각해 보시고 감사하면 좋겠습니다. 사실 이렇게 여전한 방식으로 예배당에 와서 예배드릴 수 있는 거 이건 너무 감사한 거 아니에요. 감사하십니까? 안 오는 분은 뭐예요? 지금 집에서 드리시는 분은 뭐예요? 천국은 온라인으로 못 가요. 그것만 아세요. 그런데 감사한 건 아니에요. 감사해야 할 주일에도 우리 마음은 참 쉽게 불평과 엉망으로 갑니다. 지난주 월드컵 32강 진출에 실패하니까 그냥 한 사람에게 비난이 쏟아집니다. 많은 사람에게, 우리말 그대로 가루가 되도록 까이고 있어요. 그래서 어디 도저히 있을 수가 없어서 미국으로 도망갔다고 하는데, 우리나라 국민성이 이기고 이기는 것이라고 했는데 지면 못 견딘다고 했는데. 지면 못 견뎌서 계속 이혼하고, 지면 못 견뎌서 이렇게 다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우리가 화가 나면 누군가를 가루로 만들고 싶어져요. 잘못한 직원과 배신한 친구, 말 안 듣는 배우자, 속 뒤집는 자식들, 그냥 가정과 회사에서 믿는 우리도 죄와 죄인을 구별하지, 분별하지 못하고 "저걸 그냥 확, 그냥" 그게 여러분 주제죠? 확씨야. 근데 오늘 본문에 정말 가루로 만드는 사람이 나오는 거예요. 요시야가 헐고 태우고 빻아서 뿌려버려요. 그런데 그가 가루로 만든 건 사람이 아니에요. 우상이에요. 지난 본문에서 입으로 세운 그 언약이 오늘 본문에서 손의 행동으로 적용된 거예요. 말씀으로 회개한 사람은 이처럼 잘못한 남이 아니라 내 안에 우상을 부숩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우상을 가루로 만들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을 통해 우상을 가루로 만드는 세 가지 길을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 꺼내 불사릅니다
4절이에요.
왕이 대제사장 힐기야와 모든 부제사장들과 문을 지킨 자들에게 명령하여 바알과 아세라와 하늘의 일월성신을 위하여 만든 모든 그릇들을 여호와의 성전에서 내다가 예루살렘 바깥 기드론 밭에서 불사르고 그것들의 재를 벧엘로 가져가게 하고
요시야가 율법책을 보고 통곡하고 회개해서 말씀을 자기가 듣고 들려주고, 회개한 자들이 모이면 저절로 개혁이 사실은 이루어지죠. 그래서 구체적으로 술, 담배, 용돈, 또는 친구 관계, 식성 등 모든 분야에 저절로 개혁이 이루어지는 것이 있는데요. 그러기 위해서 교회를 통해서 계속 말씀이 들려지게 하는 것이 절대적이에요. 그런데 교회가 그 역할을 하지 못하면 사회가 무너지는 거예요. 그러니 성전이 더럽혀지는 것은 우리의 타락을 가져오는 지름길이에요. 그래서 예수님도 예루살렘 성전과 바리새인들을 보시고 우시고 노하셨어요. 예수님은 세상을 보고 울지 않아요. 개인 구원이 사회 구원이기 때문에, 특히 개인 구원을 위해서 이 성전 청결은 반드시 필요했어요. 그러니 언약을 세운 요시야가 먼저 성전을 정화하기 위해서 4절부터 7절까지 대제사장 힐기야부터 문지기까지 성전 섬기는 사람을 총동원합니다. 회개는 혼자 골방에서 끝내는 게 아니고요. 공동체가 함께 움직이는 일이에요. 이들에게 무엇을 명령하나요? 우상을 위하여 만든 모든 그릇들을 여호와의 성전에서 꺼내라고 합니다. 우상 숭배의 그릇들이 이방 신전도 산당도 아니고 여호와의 성전 안에 있었단 말이잖아요. 할아버지 므낫세가 이걸 채워놓은 거예요. 그러니까 반세기가 지나도록, 50년이 지나도록 하나님 섬기다 우상 섬기다, 우상 섬기는 게 자연스러워져서 이제는 이상한 줄도 모른 채 살았던 거예요. 그래서 그릇들을 꺼내 어떻게 합니까? 기드론 밭에서 불살라 재로 만들어요. 이 재가 오늘 제목인 가루와 같은 단어예요. 우상의 도구를 가루로 만드는 거예요. 어디서요? 기드론, 다윗이 압살롬 때문에 울면서 건너던 기드론의 밭에서 우상을 불살랐죠. 예루살렘 성 안에 그 가루, 재를 남겨두는 것조차 부정하기 때문에 우상 숭배의 본거지 총본부인 벧엘로 그 잿가루를 보냈어요. 왜죠? 북이스라엘이 열심히 금송아지 우상을 숭배하다가 망했잖아요. 그걸 상기시키는 거예요. 벧엘에다가 잿가루를 보냈어요. 기드론 밭은 묘지였어요. 그러니까 우상을 재로 만들어 죽은 자들의 자리로 보낸다 이런 의미도 있어요. 그러니까 생명을 준다던 우상이 사실은 죽음이라는 거예요. 내가 우상처럼 떠받들던 것이 다 죽음이라는 뜻이에요.
그릇만 꺼낸 게 아니라 5절에 보니까 사람까지 갑니다.
옛적에 유다 왕들이 세워서 유다 모든 성읍과 예루살렘 주위의 산당들에서 분향하며 우상을 섬기게 한 제사장들을 폐하며 또 바알과 해와 달과 별자리와 하늘의 모든 별에게 분향하는 자들을 폐하고
이제 물건을 넘어 사람까지 갑니다. 여기 제사장은 740회 사용된 유다의 제사장 "코엔"이 아니라 단 3번밖에 사용되지 않은 "케마림"이란 단어로 쓰였는데요. 이것은 가나안의 제사장들을 가리키는 명칭이에요. 그러니까 유다의 왕들이 대대로 자리를 주고 월급을 주며 키워서 거짓 제사장들을 세워 우상을 섬기게 했다는 거예요. 유다의 열왕들이 자기 사욕을 쫓아 그 제사장들을 키웠던 것, 이걸 이제 요시야가 폐한 거죠. 그리고 그게 얼마나 강력했는지, 그렇게 돼서 수백 년 내려왔어요. 이런 제도를 요시야가 지금 폐하는 거예요. 그 제사장들을 따라 분향하는 자들이 있었을 거잖아요. 분향하는 자들까지 다 폐했다고 오늘 폐하다가 두 번 나오잖아요. 근데 그들은 우상 숭배를 중단하고 하나님을 섬기라는 요시야 왕의 요구를 끝까지 거부했을 거예요. 왜냐하면 우상 제사로 먹고 살던 제사장들이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었으니까 반발이 엄청났겠죠.
그런데 여기 한글에는 두 번 나오지만 원문에는 폐하다가 한 번만 나오네요. 이 단어가 행위의 완결을 나타내는 완료형으로 쓰여서, 이 일이 매우 단호하고도 완전하게 시행되었다는 뜻이에요. 폐하다는 거 얄짤없이 요시야가 폐했다. 근데 성경은 그 반발을 기록하지 않았어요. 반발이 없었다는 게 아니라, 이 요시야 언약 공동체가 흔들리지 않아서 그 반발을 잠재울 수 있었다는 거죠. 그러니까 태풍 속에 찻잔이 아니고 찻잔 속에 태풍이 됐다 이거죠. 우리도 그동안 문제가 없었겠어요? 근데 다 찻잔 속에 태풍이 되어가지고. 그러니까 요시야의 믿음이 대단하고 권력이 강해서가 아니라, 말씀으로 회개하고 언약을 세운 이 공동체가 받쳐주었기 때문에 이 요시야 공동체 때문에 전무후무한 개혁을 요시야가 이룰 수 있었던 거예요. 이 성경에 나오는 어마어마한 이게 너무 중요합니다. 이 공동체가 너무 중요해요. 그래서 여기만 오면 여러분들이 알 수 없는 힘에 의해서 가정이 회복되고 이러는 거예요.
요시야가 사람들을 다 모아갔어요. 그 말씀의 힘에 의해서 설득이 된 거죠. 요시야의 개혁은 더 깊이 들어갑니다. 6절이에요.
또 여호와의 성전에서 아세라 목상을 내다가 예루살렘 바깥 기드론 시내로 가져다 거기에서 불사르고 빻아서 가루를 만들어 그 가루를 평민의 묘지에 뿌리고
이 우상 중에 아세라 목상은 대표예요. 근데 이 아세라 목상을 므낫세가 성전 안에 세웠어요. 이걸 손자 요시야가 꺼내서 태우고 빻아서 가루를 만들어 무덤에 뿌린 거예요. 우상을 죽인 거예요. 기드론 시내, 4절에 기드론 밭과 별개의 장소가 아닌데요. 기드론 전체는 골짜기인데요. 평지가 있고 평지보다 더 낮은 시내가 우기에는 물이 흐르고 건기에는 마르기 때문에, 시내, 밭, 묘지 등으로 불리면서 우상과 제단 등을 태우거나 빻아서 가루를 만들어 폐기하는 것과 관련돼서 사용된 아주 전통적인 장소가 기드론이예요. 생각해 보세요. 다윗이 눈물로 걸어간 그 장소에 평민의 묘지가 있어서 가루를 그 위에 뿌린 것은, 부정한 시체와 관련해서 우상의 저주스러움과 멸망을 보이고자 함이었고요. 이런 우상이 거룩한 성 예루살렘에 존재하지 말아야 될 것임을 상징하기도 했어요. 그래서 기드론은 다윗이 맨발로 걸어가고, 우상을 제거하기 위한 평민의 묘지가 있고, 그리고 그것은 가장 거룩한 예루살렘 경계선에 있는 거예요. 이게 생각나는 거예요. 그럼 여기서 뭘 좀 생각해 볼 수 있을까요?
구속사는 좋은 역할 나쁜 역할이 없어요. 눈물을 흘리며 걸어가는 기드론이 모든 우상의 재물을 받아내는 묘지가 되었잖아요. 이 땅에서는 주어진 역할이 최고의 역할이고, 그것이 낮은 자리에서 바로 예수 믿게 하는 역할인 거예요. 어제는 좋은 환경에서, 오늘은 나를 손가락질하고. 천년이 하루 같고 하루가 천년 같기에, 이 기드론의 다양한 역할을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한참 지나면 거기 다윗이 걸어가는 그러니까 눈물로 걸어가도, 나는 모든 악의 가루를 우상의 가루를 받아내는 그 역할도 해야 되는 거예요. 눈물로 기도하는 사람은 자기를 주장하면 안 되고 모든 쓰레기를 다 버리고 받아내는, 이게 그러니까 어디나 구속사가 다 있고, 기드론이 오늘 계속 많이 나오거든요. 그런데 아세라가 끝이 아니에요. 7절이에요.
또 여호와의 성전 가운데 남창의 집을 헐었으니 그곳은 여인이 아세라를 위하여 휘장을 짜는 처소였더라
남창의 집이 어디 있었어요? 여호와의 성전 가운데 있었어요. 여인들이 아세라를 위해 휘장을 짜둔 곳인데 거기 남창도 살았다는 거예요. 무슨 말입니까? 우상 숭배와 음란은 하나라는 거예요. 우상 숭배 자체가 영적인 간음이거든요. 신랑이신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따라가는 것이니까 반드시 육적인 음란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거예요. 동성애를 반대하는 거는 해도 안 해도 되는 게 아니에요. 이 성전 안에 있는 것들은요, 남창을 세우면 되겠습니까?
지난주에 법원이 동성 커플을 사실혼에 준하는 생활공동체로 인정하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어요. 정부가 사실혼과 비친족 동거가구까지 가족지원 서비스 대상에 포함하는 방안을 검토하면서 "사실혼과 유사한 생활공동체는 법률상 보호할 가치가 있는 이익으로 봐야 한다"고 판시를 했어요. 조금조금씩. 그리고 지난 주일에 국회에서는 만삭이라도 일주일 전이라도 낙태를 합법화하는 것이 발의가 되었어요. 그리고 약물로 낙태하는 아주 손쉽고 간단한 그 태아 폐기법, 이거 낙태법 발의를 해서 장관직을 걸고 통과시키겠다고 그러니까, 이게 여성인권보호법인가요? 생명보호법이 제정되도록 힘써야 하는데 이런 걸 외면하면 어떡해요. 그래서 각종 이즘과 이념이 종교가 되었어요. 우리가 하나님 믿는 것처럼 그 이념을 어려서부터 지금 종교처럼 믿으니까 정말 안 변하는 거예요. 그 중에서도 공산주의가 무서운 거예요. 그것은 하나님 자리에 사람이 있기 때문인데요. 기독교를 가장 대적하는 것이 공산주의 아닙니까? 막스는 "종교는 아편이다"라고 그래놓고는 사람이 그 자리에 있는 거예요. 여러분, 진보건 보수건 고난은 누구나 올 수 있잖아요. 여기서 주님을 만나야 되잖아. 그러면 당을 떠나서 낙태나 동성애 찬성을 할 수가 없는 거예요. 주님을 만난 사람은 이 문제는 정치가 아니잖아. 근데 무엇이든 성역화라는 것은 독재라는 의미예요. 왜냐하면 성역화가 되면 토를 달 수가 없잖아요.
어떤 성도분이, 이렇게 전도할 때도 그렇고, 우리 교회에서 내가 그냥 "우리 가정이 살아났다, 살아났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살려주셨지, 왜 김양재 목사가 살려줬다고 하냐" 이런 분들이 있어요. 그런데 우리는 성역화가 아니라서 설교 댓글창도 열어놓았고요. 저는 이메일도 개척부터 지금까지 열어놓았어요. 나눔에서나 어디에서나 저와 교회에 대한 피드백을 여과 없이 하는 분들이 많아요. 저는 이메일도 개척부터 지금까지 열어놓았어요. 제가 힘들 때 많았어요. 이거 언제 닫아야 하나를 수없이 고민했지만 살아나는 한 분 때문에 여기까지 왔어요. 그래도 그 메일을 통해서 여러 부탁과 재정 도움 요청과 악의적인 편지는 제가 못 도와드려요. 그건 양해를 해주셔야 돼요. 그러니 힘든 사연과 또 비난 때문에 눈물이 마를 날이 없어요. 여러분들 비난하라고 제가 열어놓은 게 아닌데. 정말 죽어가는 한 사람 때문에 열어놓은 건데. 그래도 제가 우리들교회의 정말 핵심 가치가 말씀 묵상, 가정중수인데, 누구한테도 못하는 얘기를 저한테 하시는 분들이 많았기 때문에, 비단 한국뿐만이 아니고 세계 곳곳에서. 그래서 한 사람 구원하는 게 천하보다도 귀하다고 그랬으니까 하나님의 은혜로 진짜 여기까지 왔어요. 제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나. 이 큰 교회 목사가 어떻게 이메일을 열어놓을 수가 있겠어요. 이거 기적 아니겠어요. 그러니까 이 한 사람 살리는 거를 끝까지 완주하도록 여러분 도와주셔야 돼요. 여러분들이 그렇게 자꾸 불평하는 메일 보내시면 안 돼요. 우리는 믿음이 각각 달라서 불평하잖아요? 불평이 많아요. 그래도 하나님은 요시야 공동체처럼 여겨져서 여기까지 이렇게 온 거는 진짜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이 돼요.
거꾸로도 마찬가지예요. 남편 버리고 아내 버리고 가정을 깨뜨리면 결국 하나님을 배반하고 떠나게 되는 거예요. 이게 이론의 논의예요. 그래서 가정은 지켜야 합니다. 내가 깨뜨리는 사람이 되면 안 돼요. 그러니까 이제 조현병도, 조울증도, 우리 청년부에서 결혼을 다 했어요. 결혼을 하고 가정을 지키기로 하고, 그 아이를 알고 결혼을 하니까 사탄이 놀라서 도망가는 것 같아. 병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가정을 지키겠다고 하니까 도와주셔서 다들 이혼하지 않고 지금 가정을 지키게 하시는 것 같아요. 이것도 너무 기적 아니에요?
이처럼 요시야 개혁의 1단계는 성전의 우상을 꺼내 불사르는 거예요. 성전이 "이것 주세요 저것 주세요" 하는 것이 아니죠. 하나님을 높여서 찬양하며 신앙을 고백하는 자리예요. 거룩이에요. 팔복이에요. 근데 바알과 아세라와 일월성신에게 제사한다는 건 뭡니까. 이 땅에서 성공하고 번영하고 힘 있기를 비나이다 비나이다 하는 거죠. 세상 행복이고 기복이에요. 그러니까 성전 안에 우상단지가 있다는 건 거룩의 자리에 세상 행복이 놓인 거예요. 팔복의 자리에 기복이 딱 자리 잡았어요. 이게 옛날 유다만의 이야기입니까? 오늘 우리 이야기예요.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 안에 계신다고 하십니다. 우리 공동체가 성전이고 우리 각 사람이 성령의 전이에요. 그러면 오늘 본문은 지금 어디를 스캔하고 있어요. 우리 마음을 살피고 있는 거예요.
우리는 우상 숭배 안 한다고 생각하죠. 그런데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 이것이 없이는 못 산다고 하는 것, 그게 다 우상이죠. 칼빈이 그랬죠. 우리 마음이 우상 공장이라고. 우상은 만들려고 애쓸 필요가 없어요. 여러분들이 큐티 안 하면 우상이 그냥 금세 세워져요. 교회 안 오면 금세 세워져요. 불신 결혼하면 멀리 떠나요. 그러니까 가만히 있어도 돈을 탐내는 바알이, 능력 있는 자녀를 보험상품으로 하고 싶은 아세라가, 미래를 통제할 힘을 의지하는 일월성신을 끊임없이 우상 공장에서 뽑아내는 거예요. 이렇게 스스로 만든 우상에 깔려 죽어가는 게 인생이에요. 이런 우리를 하나님이 버리지 않고 찾아오셨어요. 말씀으로 찾아오셔서 회개케 하시고 구원의 언약을 맺으셨어요. 그래서 예수 믿은 순간부터 천국 갈 때까지 성도의 삶은 종교 개혁이에요. 그 첫 단추가 우상을 마음에서 꺼내 불태우는 거예요. 내 성전도 청소되어야 되고 교회도 청소되어야 돼요. 꺼낸다는 것은 뭐예요. 오픈한다는 거잖아요. 우상은 안에 숨겨두면 절대 안 죽어요. 죄는 공동체 안에서 오픈할 때 힘을 잃습니다. 그게 목장에서 하는 오픈이에요. 내 우상을 내 입으로 꺼내놓는 순간 우상은 이미 타기 시작해요. 불사르는 것은 다시는 쓰지 못하게 없애는 거예요. 우상은 재활용하는 게 아니에요. 아깝다고 보관하면 안 돼요. 반쯤 태운 우상은 반드시 다시 살아나거든요. 완전히 끊어내야 되는 거예요. 아주 굉장히 극단적인 단어가 많이 등장하죠. 빻고 태우고 헐고.
그런데 우리에겐 이렇게 태울 불이 없어요. 갈멜산에서 바알 제사장은 불을 내리려고 450명이 빌고 빌어도 불이 내려오지 않아요. 그러나 엘리야 한 사람이 기도하자 하늘에서 불을 내려 제물은 물론 나무와 돌과 흙까지 태우셨어요. 우리에게도 이 불이 필요해요. 성령의 불이 임하셔서 우리 마음속 우상을 태워주셔야 합니다. 이번 주에 함께 기도하십시다. "주여, 성령의 불을 내려 주시옵소서. 성령의 불을 내려 주시옵소서. 우리 마음의 더럽고 악한 우상들, 탐욕과 정욕과 교만과 미움과 불안과 중독까지 모두 태워주시옵소서." 아멘.
적용 질문이에요.
너무 가지고 싶어 달아오르는 건 무엇입니까?
아직 꺼내 오픈하지 못하는 내 안의 욕심은 무엇입니까?
이번 주 목장에서 오픈할 수 있습니까?
성령의 불로 태워주시길 간구하겠습니까?
구원의 역할은 좋은 역할 나쁜 역할이 없어요. 지금 무슨 역할입니까. 기드론 때문에 은혜를 많이 받았어요. 눈물 흘리고 구원을 위해서 기도해도, 우리는 쓰레기를 받아내는 역할을 하다 가야 되는 거예요. 기드론이 똑같은 역할을 다 하고 있잖아요.
한 나눔이에요. 이분 목자님이에요. 자녀에게 할 유언은 "예수님 잘 믿어라, 우리들교회 가라, 빚은 꼭 갚아야 한다, 이혼하지 마라." 아내에게 유언은 "천국에서 만나자. 그리고 만약 사망보험금이 있다면 교회에 헌금해라." 목자가 되고서 목장공동체 안에 있으니 한 몸이 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기까지 너무 좋았어요. 지난번 주차부에서 있었던 일은, 앞에 아파트 사시는 어떤 여성분인데 주차 정리를 왜 안 하냐고 잘하라고 그래서, 그럼 와서 직접 하라 그랬더니 그분이 "이 원수 같은 교회 안 온다"고 하셔서. 제가 쫓아가서 왜 욕을 하고 가냐고 하니까 남편분까지 내려서 욕을 하면서 서로 고성을 지르고 싸웠다는 거예요. 교회의 덕이 되어야 하는데 참지 못했습니다. 주차부 카톡에 "잘못했습니다"라고 올렸습니다.
여러분, 기가 막히지 않아요. 이분이 목자님인데 교회도 너무 좋아하는데. 그러니까 구원 때문에 분노를 조절을 해야 되는데 그게 안 되는 것 같아요. 사회같으면 당장 아웃이죠. 유언을 너무 근사하게 하셨어요. 그래도 이런 거를 올려주시니까 제가 미워할 수가 없는 거예요. 압살롬에 대한 다윗의 마음이 체휼이 되는 거예요. 교회를 너무 사랑하시고 신앙고백도 있으신데 이런 분들이 많은 거예요. 그런데 이런 분들은 교회도 나오시고 주차부도 섬기시고 자기의 죄를 오픈함으로 불태워가는데. 그래서 우리는 행위로 보고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가 아니고. 그런데 주차가 너무 힘들어요. 여러분, 그런데 주차부에 또 이런 분노 조절이 안 되는 분들이 많이 계세요. 그런데 그러면은 이런 분들이 또 봉사를 좋아하세요. 교양 있는 분들이 욕만 하고 봉사를 안 해요. 의리가 있죠. 의리가. 이게 여러분이 눈물로 기도를 해줘야 될 일인 것 같아요. 그러니까 딱 보면 우리는 그렇게 화를 내고 막 이러는 사람들 막 무시가 되는 거야, 그죠? 그러고 자기는 주차 하나도 안 해. 그러니까 이거는 기드론에서는 이게 이해가 되는 거예요. 다윗은 맨발로 걸어가니까, 이게 막 일을 떠들고 하는 것들이 다 받아들여져야 돼서, 구원 때문에 해야 되는 건 인내밖에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구원의 시선으로 보면 참지 못할 일이 없는데 그렇게 여러분들이 화를 잘 내는 거예요.
어떤 분들도 간증하고 나서 또 회사 가서 그냥 부장하고 멱살 잡고 싸웠다고, 자기 자신에 대해서 너무 자괴감이 들어가지고 진짜 혼자서 초등학교 운동장 거닐면서 또 그런 걸 다 오픈을 해 놨어. 또 근데 여러분들 그렇게 욕하고 그러면 안 돼. 그러고 싶어서 그래요? 너무 사랑하잖아요. 사망보험금 나오면 다 교회에 주라잖아요. 근데 어떻게 교회를 위해서 그렇게 해를 끼칠 수가 있어요. 그렇게 교회를 사랑하는데. 그러니까 이게 하나님의 마음인 거예요. 그래서 행위로 지은 죄가 딱 드러나니까 이렇게 회개를 하시잖아요.
둘째, 더럽게 합니다
어떻게 우상을 가루로 만들까요? 계속 가루로 만들어. 8절입니다.
또 유다 각 성읍에서 모든 제사장을 불러모으고 또 제사장이 분향하던 산당을 게바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 더럽게 하고 또 성문의 산당들을 헐어버렸으니 이 산당들은 그 성읍의 지도자 여호수아의 대문 어귀 곧 성문 왼쪽에 있었더라
개혁이 성전을 나와 온 땅으로 흘러갑니다. 게바는 유다의 북쪽 끝, 브엘세바는 남쪽 끝이에요. 전국 구석구석 성문 어귀까지 다 훑는 거예요. 바꿔 말하면 삶의 길목길목까지 산당이 다 지금 서 있었다는 거예요. 산당이 뭐예요. 높은 곳에 차린 내 방식의 예배예요. 여호와를 섬긴다면서 성전이 아니라 내가 높은 자리에서 내가 편한 방식으로 드리는 예배가 산당 예배예요. 진짜 요즘에 온라인 예배가 산당 예배가 된 것 같아요. 아사도 여호사밧도 좋은 왕들이었는데 성경은 꼬리표처럼 기록해요. "산당은 없애지 아니하였더라." 온라인의 편함을 한번 맛보면 없애기가 어려워요. 조금 화가 나도 안 오고, 피곤해도 안 오고. 그냥 산당을 한번 세워놓으면 없애기가 힘들어요. 요시야의 증조할아버지 히스기야가 마침내 여러 산당을 제거했다고 나왔는데, 아들 므낫세가 금세 도로 세웠어요. 없애도 다시 살아나는 거, 그게 산당이에요. 좋은 게 좋은 거라는 혼합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거예요.
요시야는 제거만 하지 않아요. 더럽혀요. 다시는 예배처럼 못 쓰게 봉인하는 거예요. 어떻게 해요? 산은요, 태워 없앨 수가 없잖아요, 산과 터를 없앨 수 없잖아요. 그래서 그 자리를 부정하게 만드는 거예요. 하나님을 떠난 것으로, 하나님을 거스르는 것으로 선언하는 거예요. 14절에 그곳을 해골로 채웠다는 것이 더럽게 한 것이라고 보여져요. 다시는 거기서 아무도 예배를 못 드리게 만드는 거예요. 그러니까 요시야의 개혁은 너무 진짜 이렇게 구체적이에요. 산과 터와 그냥 사람과 물건 모두 달리 이렇게 지금 부수고 빻고 해골로 채우고. 너무 진심이에요.
이어서 산당 제사장들에 대해서 조치를 내리는데요. 9절에.
산당들의 제사장들은 예루살렘 여호와의 제단에 올라가지 못하고 다만 그의 형제 중에서 무교병만 먹을 뿐이었더라
산당 제사장들은 죽이지 않고 먹고 살게 해줘요. 다만 다시는 제단에 못 올라가게 하죠. 직을 봉인했어요. 그러나 그들도 다시 양육받고 회복받아야 했기 때문에 이 첨가물이 없는 무교병을 먹게 해요. 다시 원리로 돌아가게 하기 위해서. 이처럼 요시야는 과거 과오를 저지른 제사장이라고 해도 철저히 회개하고 여호와 신앙을 회복하였을 때는 이제 생계유지의 수단을 보호해 주는 아량을 베풀어서, 국민 통합의 기틀을 또 마련한 거예요.
이어서 10절이에요.
왕이 또 힌놈의 아들 골짜기에 도벳을 더럽게 하여 어떤 사람도 몰렉에게 드리기 위하여 자기의 자녀를 불로 지나가지 못하게 하고
이 자녀 우상이 굉장했잖아요. 지금까지 우상 숭배의 끝판왕, 바로 자녀를 바치는 거예요. 그런 끔찍한 일이 저질러진 곳이 도벳이에요. 힌놈의 아들 골짜기에 있었어요. 우상 숭배자들은 거기서 자기 자녀를 불로 지나가게 했어요. 예레미야 7장 31절을 보면 그들이 자녀들을 불에 살랐나니, 얼마나 끔찍했으면 이 골짜기 이름 게헨놈(Gehennom)이 신약에 게헨나(Gehenna) 즉 지옥이라는 말이 됐어요. 자녀 우상은 정말 지옥인 것 같아요.
우상은 이렇게 끝까지 갑니다. 처음에는 우상이 복을 준다고 그러잖아요. "복을 준다." 우상처럼, 또 기복이 다 복을 준다고. 결국 내게서 가장 소중한 건, 자녀까지 내놓으라고 해요. 우상은 삼키는 거예요. 이게 남의 이야기일까요? 산당은 내가 높이 쌓아올린 자리예요. 성공, 승진, 사람들의 인정, 내 머리에 씌운 왕관 같은 것들이죠. 성문 어귀까지 산당이 서 있었다는 거는 집과 시장, 직장, 학교, 길, 심지어 핸드폰과 컴퓨터 등 삶의 모든 길목까지 산당 제사가 그냥 쫙 들어와 있다는 거예요. 주일엔 성전에서 예배는, 이제 당장 교회를 떠나는 순간부터, 특별히 월요일부터는 산당에서 그냥 다 사는 거예요. 도벳에서 내 체면과 성공의 제단에 자녀를 올려놓는 거예요. "다 너를 위해서야" 하면서 사실은 나를 위해 아이를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는 거예요. 어떤 목자님은 자녀들을 위해 공부를 위해 대치동에 왔는데 공부도 하지 않고 아이 셋이 다 교회를 떠나 있는 상태라는 거예요. 그런 나눔을 할 수 있는 우리 목장이에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더럽혀야 합니다. 내가 높이는 그 자리를 부정하다고 선언해야 돼요. 다 갖춘 것 같아도, 너무 오르고 싶어 보여도 그것이 하나님 떠난 자리임을 인정하고 선언해야 하는 거예요. 다시는 거기서 절하지 않도록 봉인해야 해요. 이게 뭐냐면 내가 낮아지는 거예요. 산당이 왜 생겼어요? 높아지려고 하니까 생겼어요. 성공으로, 인정으로, 자식으로 높아지려고 한 층 한 층 지금 쌓은 거잖아요. 그러니까 그런 산당을 더럽힌다는 건 결국 나를 낮추는 거예요. 내 왕관 자리에 "나는 죄인입니다"라는 죄패를 쓰는 거예요. 이 산당을 유다 열왕 중에 아무도 패하지 못했다고 했잖아요. 내가 그 쌓아놓은 거, 내 성공상, 자녀 우상, 그거를 패하는 건 용서할 수가 없어요. 왜 못 패했어요? 왕들이 회개도 않고 산당을 폐하라 그러면 폐합니까? 요시야가 옷을 찢고 통곡했기 때문에. 성경이 이 낮아짐을 한 단어로 말합니다. 재, 가루, 바로 우리 원재료인 흙이에요. 이 가루가 스스로 금덩어리가 되고 싶으니까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놓고 거기에 절하는 거예요. 그러니 이런 우상을 가루로 만들려면, 산당을 다시 못 쓰게 하려면, 내가 가루라는 걸 인정해야 돼요. 아브라함처럼 하나님 앞에서 "나는 티끌이나 재와 같사오나 감히 주께 고하나이다(창 18:27)" 고백해야 돼요. 내가 가루임을 아는 거, 그게 회개예요. 그래서 욥이 뭐라고 합니까?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하나이다." 내가 가루일 뿐임을 인정해야 내 우상도 산당도 가루로 만들 수 있는 거예요. 내가 높인 것을 낮춰야 하나님이 높아지십니다. 우리는 행복해지려고 산당을 쌓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려고 그걸 허무세요. 인생의 목적은 행복이 아니고 거룩이기 때문에, 이 성전에서 거룩이 울려 퍼져야 되는데 자꾸 행복이 행복이 그냥 성전 가운데 있다고 그러잖아요. 그렇다고 여러분들이 행복하지 말라는 게 아니에요. 거룩을 놓으면 행복은 따라오게 돼 있어요. 한번 스스로 물어보세요. "이것만은 건드리면 안 돼" 하는 게 뭐예요? 그걸 더럽히는 게 상상도 못할 일이라면 그게 바로 우상이에요. "난 그거 없이는 못 살아, 상상이 안 돼" 그게 우상. "나는 그건 너무 싫어, 그거 좋아하라 그러면 상상이 안 돼" 그거 다 우상이에요.
적용 질문이에요.
나에게 "이것만은 건드리면 안 된다"는 건 무엇입니까?
내 체면과 성공의 제단에 자녀를 제물로 올리고 있지 않습니까?
삶의 어느 자리가 내 산당입니까?
어떻게 더럽혀 멀리하겠습니까?
우리 부목자 "이것만은 건드리면 안 된다"는 나눔인데요. 우리들교회도 이런 분이 많아서. 아내가 차별금지법을 동의하고 성소수자를 옹호하는 쪽이라 이제 담임 목사님 말씀이 걸리기 시작해가지고 눈치가 보여요. 설교 중에 그냥 가시방석이었다. 아내 신경 쓰느라고 말씀이 잘 안 들리는 어려움이 있다고. 옆에서 너무 아내를 무서워하는 거 아니에요. 그렇지만은 본인은 참 쉽지만 않다. "당신이 나보다 옳다"의 기준이 어디까지인지 어렵다. 낙태나 동성애는 옳다고 아내가 옳다고 양보하기 어려운 부분이라고 생각이 된다는 거예요. 낙태나 동성애는 우리 교회가 옳다고 하기가 어렵다는 거지. 그렇죠. 이렇게 하면은 이렇게 하면은, 이렇게 하니까 다른 목자님이 "그래도 성경에 나와 있는 말씀은 양보할 수가 없어요. 이 동성애나 생명과 같은 진리에 대해서는 타협할 수가 없죠. 그러니까 '나보다 옳다'는 죄의 고백에 대한 부분이고, 아내의 구원을 위한 길이 십자가의 길이긴 하지만, 생명을 지켜야 한다는 메시지와 기준은 전도에 있어서 흔들리면 안 된다고 생각을 해요." 그랬더니 또 다른 분이 "오늘 아내가, 아내가 생명을 지켜야 한다는 메시지와 기준에 동의를 안 하면 목자가 될까 봐 걱정이 되네요." 이런 얘기를 어떻게 해줘야 되나. 역할에 대해서 공동체에서 한마음을 갖기가 어렵다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구속사는 그 사람 입장에서 끝없는 사람에 대한 이해를 하는 거잖아요. 그러나 변하지 않는 진리가 있기 때문에, 또 그 가운데서도 아무리 당신이 옳다고 해도 원칙은 또 있는 거죠. 우리가 거짓말하고 살인하라고 해도 당신이 옳다고 해도 원칙은 또 있는 거죠. 당신이 옳다는 건 못하잖아요, 그렇죠? 그러나 이렇게 서로 나누면서 갈 때 저는 하나님이 역사하실 줄 믿습니다. 우리 이렇게 언론의 자유가 있어요.
셋째, 빻아 내립니다
그래서 우상을 어떻게 우상을 가루로 만들까요? 11절에.
또 유다 여러 왕이 태양을 위하여 드린 말들을 제하여 버렸으니 이 말들은 여호와의 성전으로 들어가는 곳 근처 내시 나단멜렉의 집 곁에 있던 것이며 또 태양 수레를 불사르고
태양의 말과 수레를 누가 드렸습니까? 유다 여러 왕이에요. 한 왕이 아니라 여러 왕이 대대로 드린 거예요. 그게 어디 서 있었어요? 여호와의 성전으로 들어가는 곳 근처예요. 예배하러 들어가는 문 앞을 대대로 물려온 우상이 지키고 있었던 거예요. 12절입니다.
유다 여러 왕이 아하스의 다락 지붕에 세운 제단들과 므낫세가 여호와의 성전 두 마당에 세운 제단들을 왕이 다 헐고 거기서 빻아 내려서 그것들의 가루를 기드론 시내에 쏟아 버리고
고조할아버지 아하스가 다락 지붕에 세운 제단, 할아버지 므낫세가 성전 두 마당에 세운 제단, 그러니까 요시야가 지금 뭘 헐고 있는 거예요. 자기 집안이 대대로 쌓아온 죄를 지금 헐고 있는 거예요. 헐어서 빻아 내려 가루를 만들어 기드론 시내에 쏟아버린 거예요. 우리로 말하면 대대로 내려온 그 명망한 걸 이 손자가 다 지금 쏟아 가루로 빻아 내리는 거예요.
계속 이어집니다. 13절이에요.
또 예루살렘 앞 멸망의 산 오른쪽에 세운 산당들을 왕이 더럽게 하였으니 이는 옛적의 이스라엘 왕 솔로몬이 시돈 사람의 가증한 아스다롯과 모압 사람의 가증한 그모스와 암몬 자손의 가증한 밀곰을 위하여 세웠던 것이며
이번엔 얼마나 거슬러 올라갑니까. 솔로몬까지 가요. 300년 전이에요. 성전을 지은 바로 그 왕이 이방 아내들을 위한 산당도 지은 거예요. 그게 300년 넘게 예루살렘 앞산에 그대로 서 있었던 것. 그 산은 바로 기름부음의 산인 감람산인데, 그런데 성경은 이름을 비틀어 멸망산이라고 부릅니다. 우상이 서 있는 동안 축복의 산이 멸망의 산이 된 건데요. 이걸 누가 세웠나. 이스라엘이 너무나 너무나 존경받던, 온 세계의 부가 극에 달해서 솔로몬 왕에 대해서 누구도 말을 못해요. 그런데 솔로몬이 세웠다는 걸 지금 밝혀내고 있어요. 요시야가. 이 산당의 원흉이 솔로몬이다. 요시야가 대단한 개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너무 잘 먹고 잘 살면요 말을 못해요. 우리는 솔로몬은 그냥 맨날 그냥 재판에서 지혜가 넘친다, 그 얘기밖에 우리는 기억나는 게 없잖아요. 솔로몬은 그냥 여인의 아들을 찾아주는 너무나 지혜의 왕. 그런다니까요.
마지막 14절에.
왕이 또 석상들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들을 찍고 사람의 해골로 그곳에 채웠더라
석상을 깨트리고 아세라 목상을 찍고 그 자리를 사람의 해골로 채웠어요. 시체의 부정으로 영원히 봉인돼서 다시는 거기에 아무것도 세우지 못하도록 하는 거죠. 그러니까 민수기에 보면 죽은 사람의 시신에 접촉하는 것이 종교의식상 부정하다고 여겨졌기 때문에요. 그러니까 이 우상 가루를 빻는 것은 지금 이 동안에 금지구역 없이 매우 단호하게, 제하고 불사르고 빻고 깨뜨리고 찍고, 개혁에는 제외구역이 없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냥 솔로몬부터 자기 할아버지 므낫세부터 아하스부터 다 개혁을 하는 거예요.
여러분, 이 마지막 가루의 우상들이 다 뭡니까? 전부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것들이에요. 뿌리예요. 내가 만든 우상이 아니라 태어나 보니 이미 집안에 서 있던 우상이에요. 가문의 자랑, 물려받은 기질, 대물림된 상처, "우리 집안은 원래 이래" 하는 가치관. 물론 부모님이 물려주신 것 자체가 죄라는 말이 아니고요. 그런데 그것이 내 의지처가 되고 내 자랑감이 되고 내 피난처가 된다면, 어떤 유산이든 우상이 되는 거예요. 그리고 그 우상을 지금 붙들고 있는 건 부모가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에요.
그런데 보세요. 가장 깊은 뿌리는 가장 좋았던 시절에 심겼습니다. 솔로몬의 산당이잖아요. 가장 지혜롭고 가장 영광스러웠던 시절에 심긴 죄가 가장 오래 갔어요. 애굽도 400년에 그거가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애굽은 미약하게 살아있어요. 우리는 애굽을 못 버려. 400년 노예 생활에서도 맨날 애굽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그래서 이제 아무도 못 건드리는 거예요. 내가 자랑이니까. 잘나가던 시절 얘기를 날마다 하고, 내가 자랑이니까. "우리 집안이 그러면" 이 뿌리도 빻아 내리면 되겠네요. 그런데 여러분, 여기서 막히잖아요. 그릇은 꺼내면 되고 산당은 봉인하면 돼요. 그런데 뿌리는 뽑으면 나무가 뽑혀요. 물려받은 기질, 가치관, 상처, 그게 곧 나거든요. 성경이 옛사람이라고 부르는 내 자아예요. 그래서 내가 자랑하는 게 아니라 결국 마지막 우상은 나 자신인 거예요. 내가 나를 빻을 수 있어요? 없어요. 아까 내가 가루임을 인정하는 게 회개라고 했잖아요. 그런데 인정까지는 하겠는데 이 마지막 우상은 내 손으로 안 부서지는 거예요. 부술 수가 없어요.
12절에 "빻아 내리다"를 이게 히브리어로 보면 "상하다"라는 뜻이 있어요. 이 단어 설교 제목으로도 나왔죠. 상한 갈대. 애굽은 상한 갈대예요. 애굽은 상한 갈대 지팡이라 그래요. 그 상한이 빻아 내려진 것과 같아요. 또 메시아가, 이사야가 메시아를 예언하여 쓴 바로 그 말,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예수님을 말할 때 썼어요.
여러분, 이게 복음이에요. 빻아져야 될 것은 우상만이 아니에요. 우상을 만들고 산당을 쌓아, 나 이미 밑동 잘리고 허리 꺾인 상한 갈대 같은 나예요. 그런데 하나님은 상한 갈대 같은 인생을 꺾지 않으십니다. 상한 갈대 같은 인생은 꺾지 않으시고 우상의 제단은 부수십니다. 우린 자꾸 반대로 하잖아요. 상한 사람은 부수고 오래된 우상은 지켜요. 그냥 상한 사람 부수는 게 우리 전공이에요. 무시하고. 그런데 주님, 우리를 살리시려고 우리가 섬기는 우상을 가루로 빻아 내리시는 거예요. 그래서 더 놀라운 게 있어요. 주님은 상한 갈대 같은 우리를 꺾지 않으시려고 자신이 대신 상하셨어요.
이사야 53장이 예언했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오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래서 성경이 "내 옛사람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하는 겁니다. 내가 못 박는, 내 뿌리를 빻으시려고 주님이 십자가에서 자기 몸이 가루가 되기까지 내어주신 거예요.
우리가 큐티에서 다윗을 보고 있는데요. 압살롬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내 아들 압살롬, 내 아들 압살롬, 차라리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다면" 아버지의 애끓는 정으로도 아들의 죽음을 대신해 주지 못하는데, 구원을 위한 죽음을 우리가 어떻게 대신할 수 있겠습니까. 오직 예수님만 해 주실 수 있어요.
요시야를 보세요. 그는 이미 훌다 선지자에게서 재앙이 돌이켜지지 않는다는 말씀을 들었어요. 최선을 다해 회개했는데도 심판은 온다는 선고를 들었습니다. 억울해서 다 부숴버리고 싶은 자리 아닙니까? 그런데 요시야는 말씀을 찢지 않았어요. 사명을 내려놓지 않았어요.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어요. 아무리 이해되지 않고 절망만 되는 순간에도 하나님이 아니라 우상을 부쉈습니다. 그것은 바로 내 속의 우상을 말해요. 그러니 마지막 우상 앞에서 우리가 할 일은 하나예요. 내 힘으로 안 된다고 무릎 꿇고, 나 대신 상하신 주님께 의뢰하는 것. 그래서 상한 갈대 같은 인생은 하나님을 의뢰할 때 살게 되는 줄 믿습니다. 그래서 "주여 살려주시옵소서" 이것밖에 길이 없는 거예요.
적용 질문이에요.
부모로부터 물려받아 차마 못 건드리는 우상은 무엇입니까?
"원래 우리 집안이 이래" 하며 정당화하는 뿌리는 무엇입니까?
부수고 있는 상한 사람은 누구고 지키고 있는 오래된 우상은 무엇입니까?
내 힘으로 안 된다고 원망하지 않고 그리스도께 무릎을 꿇겠습니까?
조금 전에 우리 집사님 아내 얘기를 했잖아요. 여러분들이 얼마나 떨리세요. 그 아내가 어떡하라고. 그런데 지금 여럿 있는 데다가 장로님 한 분도 얼마 전에 커밍아웃해서 저한테 메일을 보내셨어요. 본인은 너무너무 국민의힘이 싫고, 그래서 차별금지법, 동성애는 당연히 민주당에서도 이거는 반대할 거다 이런 생각을 했다는 거예요. 그런데 이거를 발의를 하고 이러니까 진짜 이거 생명에 대해서는, 이거는 제가 잘못 생각한 것 같다. 정말 지금까지. 그러니까 그런데도 너무 잘하셔서 지금 장로님까지 되셨잖아요. 그러니까 아까 우리 집사님 아내만 그런 게 아니에요. 다 그래요. 그러면서 진짜 목사님 말씀을 너무 죄송하다고, 자기 어떤 치리도 받겠다고 그렇게 저한테 메일을 보내주신 분도 계세요.
우리나라가 시국이 지금 수상해가지고. 그러니까 지금 정치 얘기를 하는 게 아니잖아. 우리나라가 생명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잖아요. 생명에 대한 문제는, 영적 생명, 육적 생명이 다 이론의 논의예요. 구원에 대한 애통함이 있으면 생명을 그렇게 해하려고 하지 않아요. 육적 생명이 없는데 어떻게 영적 생명의 구원을 어떻게 받겠어요, 그렇죠. 그러니까 이거를 여러분들이 이해를 하셨으면 좋겠어요. 이해가 되십니까? 여러분, 내가 너무 사랑해서 하는 얘기인지 아시죠. 그러니까 이 얘기를 아무도 안 해요. 자꾸 뭐 분쟁이 일어나는 것 같아서. 저 이제 내일 천국 갈지도 모르는데, 또 이번 주일에 또 아프리카까지 가는데, 할 말은 또 하고 떠나야 되지 않겠어요. 내가 간 뒤라도 여러분들 다 하겠지만, 그건 우리나라를 지키는 근간이라고 제가 그냥 얘기한 게 아니라요. 성경을 한 절도 빠뜨리지 않고, 이 성경을 근거로 해서 얘기를 했어요. 이해하세요.
내 힘으로 도저히 안 된다고. 목장에서 이번 주 보니까, 부목사님이 아내와 힘들다고 힘든 나눔을 했더니, 그냥 목자님들과 권찰님이 아내 보고는 "남편 목사에게 돈 벌어라는 말 그만하고 돈 많이 벌어서 수고하는 남편 맛있는 거 많이 사주시고." 남편 목사님 보고는 "불신 결혼했으니까 대가 치른다고 생각하고 이유는 생각도 하지 말고, 목회자로 준비가 덜 되었으니까 능력도 부족하니까 써주는 것을 감사하고 겸손하게 교회에 잘 붙어가시라"고 하셨대요. 신임 사역자니까 그렇게도 말씀하셨을 것 같아요. 그런데 이 목사가 이 처방을 듣고 기분이 확 나빠져가지고 둘이서 싸우다가 둘이 하나가 됐어. 그래서 아내는 "불신결혼이라는 것 때문에 내가 불신자라는 거냐" 하면서 둘 다 화가 나서, 그다음 주에 목장 가서 "너무 상처받았다, 기분이 나빴다. 목자님으로 우리를 잘 챙겨주지도 않으시면서 너무나 무례하시다. 사과하시라." 그랬더니 그냥 이 60 넘은 목자님이 곧 인정하시고 곧 일어나셔서 "죄송합니다. I'm sorry." 4개 국어로 사과를 하셨대요.
상한 사람을 부수고 있다가 자기 속에 우상을 보았기 때문에, 우리가 서로서로 무릎을 꿇기 때문에, 이 요시야 공동체가 개혁을 이룬 것이 이해가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가 우상, 내 속에 인정받기 원하는 우상인데, 이렇게 드러내니까 그게 가루가 되잖아요. 우상은 감추고 있으면 절대로 죽이지 못해요. 그래서 이러니까 한번 이렇게 오픈을 하니까 아무 일이 아닌 게 됐어요. 그리고 이제 너무 놀랍지 않아요? 곧 일어나서 사과하셨대요. 이게 필요한 거예요. 우리가 잘못할 수 있죠. 근데 그냥 사과하세요. 그러면 "알았어요" 이러고 점핑하면서. 일어나서 사과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