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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하 22:3-13

옷을 찢으니라 (열왕기하 22:3-13)

김양재 목사조회 81

열왕기하 22:3-13

3 요시야 왕 제십팔년에 왕이 므술람의 손자 아살리야의 아들 서기관 사반을 여호와의 성전에 보내며 이르되 4 대제사장 힐기야에게 올라가서 백성이 여호와의 성전에 가져온 돈 곧 문지기들이 거둔 돈을 계산하게 하고 5 그 돈을 여호와의 성전 공사를 맡은 감독자들의 손에 넘겨주어 성전에 있는 일꾼들 곧 여호와의 성전 파손된 곳을 수리하는 자들에게 주게 하되 6 목수와 건축하는 자와 미장이에게 주게 하고 또 성전 파손된 곳을 수리하기 위하여 재목과 다듬은 돌을 사게 하라 7 그러나 그들에게 맡긴 은을 그들과 회계하지 말라 이는 그들이 성실히 일함이니라 8 대제사장 힐기야가 서기관 사반에게 이르되 내가 여호와의 성전에서 율법책을 발견하였노라 하고 힐기야가 그 책을 사반에게 주매 사반이 읽으니라 9 서기관 사반이 왕에게 돌아가서 왕에게 말씀을 아뢰어 이르되 왕의 신하들이 성전에 있는 돈을 쏟아 여호와의 성전 공사를 맡은 감독자들의 손에 넘겨주었나이다 하고 10 또 서기관 사반이 왕에게 말하여 이르되 제사장 힐기야가 내게 책을 주더이다 하고 사반이 왕 앞에서 읽으니라 11 왕이 율법책의 말씀을 듣자 곧 그의 옷을 찢으니라 12 왕이 제사장 힐기야와 사반의 아들 아히감과 미가야의 아들 악볼과 서기관 사반과 왕의 신하 아사야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13 너희는 가서 나와 백성과 온 유다를 위하여 이 발견한 책의 말씀에 대하여 여호와께 물으라 우리 조상들이 이 책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며 이 책에 우리를 위하여 기록된 모든 것을 행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내리신 진노가 크도다 하니라

우리가 뭔가를 찢을 때가 있어요. 예. 불합격 통보나 뭐 이별 통보를 받을 때 머리 끝까지 화가 나가지고 박박 찢어버려요. 특별히 같이 찍은 사진을 박박 찢어버리죠. 예. 그다음에 내가 이렇게 뭐 보고자료 올렸는데 쫙 제 화면, 그 소리를 찢을 때도 있고요. 예. 근데 요즘은 어때요. 찢을 종이가 없네요. 다 핸드폰에 있어가지고. 그래서 뭘 찢습니까? 사람을 찢어요. 말로 찢고 카톡으로 찢고 뒷담화로 찢어요. 그렇죠?

오늘 본문에 요시야가 자기 옷을 찢습니다. 남이 아니라 자기 옷을 말이죠. 율법책 말씀이 자기를 찌르고 들어오니까 그 앞에서 자기 옷을 찢은 거예요. 우리는 큐티하는 교회입니다. 그런데 큐티하다 보면 말씀이 나를 안 찌르고 남이 먼저 떠오를 때가 많잖아요. 그게 조금이에요, 많이 해요? 우리의 큐티는 남이 아닌 내 옷을 찢는 묵상이 되어야 하겠는데, 이것이 구속사적 말씀 묵상의 정체성이에요. 오늘 자기 옷을 찢는 요시야의 모습을 통해서 우리의 큐티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 보겠어요. 그래서 <옷을 찢으니라>


첫째, 부서진 성전을 수리해야 합니다.

3절부터 다시 한번 읽어볼게요.

요시야 왕 열여덟째 해에 왕이 무슬람의 손자 아살리아의 아들 서기관 사반을 여호와의 성전에 보냄에 이르되 너는 대제사장 힐기야에게 올라가서 백성이 여호와의 성전에 드린 은, 곧 문지기가 수납한 은을 계산하여 여호와의 성전을 맡은 감독자의 손에 넘겨 그들이 여호와의 성전에 있는 작업자에게 주어 성전에 부서진 것을 수리하게 합니다 하되 곧 목수와 건축자와 미장이에게 주게 하고 또 재목과 다듬은 돌을 사서 그 성전을 수리하게 하라.

요시야가 왜 그렇게 성군이었는지 열왕기하를 그냥 문자적으로 보면 참 알기가 쉽지 않아요. 그래서 행간을 읽으라고 하는데, 이게 역대하 34장 3절에

아직 어렸을 때에 곧 왕이 된 지 8년에 그의 조상 다윗의 하나님을 비로소 찾고

34장 보면 요시야는 16살에 비로소 하나님을 찾았고, 20살에 우상을 제거하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6년이 지난 지금 성전을 수리하고자 하는 거예요. 믿음에는 이렇게 분량이 있고 할 때가 있는 거예요. 십자가는 지혜고 타이밍이라 그래요. 요시야가 어려서 6년 동안 무의식 중에 받은 므낫세 회개를 보았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8년 지나서 꽃을 피워 비로소 하나님을 찾았다고 했어요. 그러니까 새싹 큐티인 시대도 중요하지만, 또 샛별, 어린이 큐티인 시대를 지나서 청소년 큐티인 시대도, 다른 세대가 되지 않고 다음 세대가 되기 위해 너무 중요해요. 16살은 고등학생이잖아요. 이게 너무너무 중요합니다. 이게 정말 중요해요. 요시야의 18년은 그냥 흘려보낸 시간이 아니에요. 아버지 아몬이 살해되었으니까 어린 나이에 생존 자체가 기적이었어요. 온 나라에서 우상을 제거하는 일은 정말 말벌집을 건드리는 일과 같았어요. 우상은 이미 반세기 훌쩍 넘는 기간 동안 온 나라를 뒤덮고 있었잖아요. 므낫세의 55년 통치 동안 반대가 얼마나 심했겠습니까? 이건 백성의 가치관을 개혁하는 일이었어요. 하루하루가 죽을 만큼 힘들었던 거예요. 근데 요시야가 정직하잖아요. 정직하려니까 다윗의 길을 갔으니까 광야의 눈물 길이 기다리고 있고요. 바로 이런 고난이 요시야가 유다 왕 중 유일하게 좌우로 치우칠 수 없게 막아준 비결 같아요.

우리의 전공은 치우침이에요. 남과 나에 대해 치우치고, 자식에 치우치고, 자식 중에서도 아들 딸에 대해서 치우치고, 더 잘난 아들 딸에 치우치고. 자기 자식에 치우치는 거는 죄의식이 없어요. 자기 고향에 치우치는 건 죄의식이 없어요. 그래서 우리의 치우침은 징하게 끝이 없어요. 오죽하면 치우치지 않았다는 표현은 오직 요시야에게만 쓰였다 그랬어요. 객관적으로 아무것도 못 봐요. 다 치우쳐 있어요. 이런 치우침으로 앞으로 남고 뒤로 밑져서 우리 삶에 부서진 것들이 너무 많은 거예요. 내가 치우쳐서 부서진 남편, 아내, 자식, 부모가 있어요. 건강과 돈과 지위가 부서졌어요. 그러니까 왜 무너졌는지는 생각 안 하고 거기서 또 부서지니까 빨리 수리되기만 간절히 원하며 애를 쓰는 거예요. 하지만 우리가 채워야 할 시간이 있는 거예요. 왜 그런지 아세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이에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관심은 상황이 바뀌는 게 아니에요. 내가 치우쳤기 때문에 지금 부서졌거든요. 그런데 치우친 걸 깨달아야 되는데 부서진 것만 붙들고 기도하시면 안 되는 거예요. 하나님의 관심은 부서짐으로 내 자신이 성숙하는 데, 또 거룩해지는 데 있는 거예요. 그래서 인생의 목적은 행복이 아니고 거룩인 거예요. 그래서 지금 언제 끝날지 모르는 힘든 시간을 지나고 계세요. 빨리 탈출하고 싶은 고통 속에 계세요. 그래서 하나님의 때까지 인내하며 기다려야 되는 거예요. 왜죠? 그래야 이 고난 때문에 우리가 그 길, 여호와의 길로 행할 수밖에 없게 하시기 때문이에요. 그렇게 기다리고 있으면 주의 시간이 되면 주의 뜻대로 좋은 길로, 사명의 길로 인도하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이 시기는 앗수르의 세력이 급격히 약화되고 바벨론이 부상하기 시작했어요. 그러니까 주변 강국들이 자기네들 이러는데 이 조그만 강원도 땅덩이만 한 유다에 관심을 가질 틈이 어디 있겠어요. 요시야가 비로소 하나님을 찾으니 개혁할 수 있도록 환경이 조성이 된 거예요. 요시야가 잘나서가 아니라 히스기야가 기도하니까 앗수르 18만 5천 명이 죽었잖아요. 하나님의 힘인 것 같아요. 제가 한국에서 이렇게 큐티 운동을 한 것은 도저히 제 힘으로는 할 수 없었어요. 이번에 오신 목사님들도 이렇게 견고한 남자 목사들 틈에서 어떻게 목사님이 이걸 하셨을지 보지 않아도 너무 힘든 길을 걸어오셨을 것 같다. 그렇게 알아주는 분이 있더라고요. 그렇지만 제가 비로소 하나님을 찾으니까 주변 상황을 조성하셔서 큐티 운동을 여기까지 할 수 있었다고 생각이 들어요. 제가 또 집사 때 어떻게 코스타는 갈 수 있으며, 상상이 안 되는 일들이 다 있었어요. 이렇게 고난의 18년을 잘 통과한 요시야가 한 일이 뭐예요? 이제 적극적으로 부서진 성전 수리에 진심을 다하게 되었어요. 그런데 3절 마지막 부분부터 보면 모두가 요시야의 명령이 없으면 안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요시야만 이렇게 개혁의 주체가 된 거예요. 결국 한 사람이 너무 중요한 거예요. 한 사람 므낫세는 55년 동안 나라를 말아먹었어요. 그런데 요시야 한 사람은 개혁을 이루었잖아요. 한 사람의 지도자는 너무 중요한데 므낫세 때는 우리가 심판의 시간을 겪게 하셨어요. 우리는 너무 중요한데 너무 정말 죄인이에요. 그래서 역사인식을 갖고 성경을 잘 보셔야 되는 거예요. 성전이 부서진 것은 그 자리에 똑같이 있었어요. 그런데 55년 동안 아무도 주목해서 보지 않았는데 이것을 요시야가 주목해서 봤어요. 요시야에게 성전을 향한 애정과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단점도 관심이 있어야 보이는 거예요. 그렇다고 단점을 그렇게 지적하시라는 소리 아니에요. 우리 믿음에 다 불량이 있기 때문에 그것도 하나의 옳고 그름이에요. 그러니까 단점 지적해주는 사람은 그래도 관심이 있는 사람으로, 우리가 성숙한 사람은 그것도 받아들여야 돼요. 요시야는 부서진 것을 본 데서 멈추지 않았어요. 수리하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그 방법까지 알려주는데요. 백성이 성전에 들인 예물을 모아 공사비로 정하고 그것을 감독자에게 넘겨 보수공사를 하라고 합니다. 요시야가 서기관으로서 7년 동안 성전에 대해 얼마나 생각하고 고민했는지 알 수가 있겠지요. 이 고민의 정점은 역시 사람에 대한 고민이에요. 7절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손에 맡긴 은을 회개하지 말지니 이는 그들이 진실하게 행함이니라.

여러분, 성전 감독자와 작업자들이 회개가 필요 없을 만큼 진실한 사람인지 왕이 어떻게 알겠어요? 관심이 있었다는 거예요. 성전 수리도 결국 사람이 해야 되는 거잖아요. 그러니 그 사람들이 누군지 어떤 사람인지 평소에 살피고 분별했다는 거예요. 판단과는 다른 이 분별이 없으면 아무리 재정이 준비되고 시스템이 갖춰져도 소용이 하나도 없어요. 사람에 대한 관심이 가장 중요해요. 그럼 무엇을 위한 관심이겠어요? 이 큰 교회가 비교적 무리 없이 여기까지 온 것은 바로 여러분의 구원에 대한 관심 때문인 거죠. 그 관심이 부서진 성전을 수리하는 거예요. 왜죠? 그건 성전이 예배 자리이기 때문이에요. 여러분의 예배 회복이 바로 부서진 나라, 부서진 일, 부서진 관계, 부서진 상황, 부서진 가정의 회복이기 때문이죠. 내가 성전이잖아요. 그죠? 예배를 통해 수많은 성도들이 나의 성전 수리를 위해 동원되고 교회의 수많은 모임들이 나의 수리를 위해 있는 것이고 수고하고 기도했던 수많은 성도 때문에 내 성전이 이 정도로 회복이 된 거예요. 내 개인도 교회도 수리를 위해 수많은 감독자, 작업자, 목수, 건축자, 미장이, 재목, 다듬은 돌, 문지기 등 곳곳에서 전문가와 은사가 우리의 성전 수리를 위해 은사별로 돕는 거예요. 그래서 이 세상에서도 성도의 직업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주어진 거룩한 사명인 거예요.

이 세상은 100% 이기적으로 살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진정한 이타적인 삶을 배우는 곳은 교회밖에 없기 때문에 잘 배워서 사회에 나가서 빛과 소금의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또 교회가 이타적인 삶을 배우지 못하는데요. 그러니까 우리는 북이스라엘 남유다를 봐도 거기 완전한 교회가 없잖아요. 남유다도 이렇게 므낫세처럼 완전히 깨빡을 치고 있잖아요. 그런데 다윗의 언약이 흘러가기 때문에 교회는 힘이 있고 중한 거예요. 그러므로 될 수 있는 대로 교회에서는 돈 때문에 섬기고 돈 때문에 안 섬기는 이런 일은 하지 말아야 돼요. 이해타산을 딱 내려놔야 돼요. 교회는 이타적인 곳이에요. 섬기는 것을 배우는 곳이에요. 될 수 있는 대로 교회에서는 정말 돈거래가 오고 가지 말아야 합니다. 예배가 서면 다른 것도 서고 예배가 무너지면 다른 것도 무너집니다. 예배가 제일 중요하고 우선이라는 것을 아는 것이 바른 길의 출발점이에요. 예. 오늘 우리도 나의 예배의 자리가 부서지지 않았는지 돌아봐야 돼요. 매일 큐티하고 주일 예배, 수요 예배, 목장 예배 빠지지 말고 들여서 내가 살고 나의 모든 각종 은사로 남도 살려야 합니다. 여러분이 잘 사는 목적, 또 영혼을 섬기기 위한 그 섬길 수 있는 장이 이렇게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해요. 돈 벌어서 해외여행도 가야 되겠지만은 예, 티티를 가야 되는 거죠. 그 자자손손 하나님이 축복을 해 주시는 거예요. 정말 인생을 돌아봐도 제가 이렇게 하는 것은 우리 어머니께서 그렇게 변소 청소하셨기 때문인 거죠. 우리 엄마도 치우친 게 있죠. 그러나 보고 배운 게 그거기 때문에 하나님이 오늘날 이렇게 쓰시는 거는 그 교회에서 살았잖아요. 그걸 이렇게 보여줬기 때문에 하나님과 만나는 예배가 우리의 삶의 중심이라는 것을 보여줘야 되는 거죠.

적용 질문이에요.

  • 언제까지냐며 기다리는 건 뭐예요? 기다리는 시간이 나를 치우치지 않게 지켜주는 길임을 믿습니까?

  • 내 예배의 자리는 어떻습니까? 부서진 곳은 없습니까?

  • 가정과 교회와 직장에서 영수증이 필요 없을 정도로 정직한 사람으로 인정받고 있습니까?

  • 나의 수입은 하나님 앞에서 정직한 열매입니까?

갑자기 생각하기도 싫고 찔려가지고 떠나고 싶죠? 내가 주식해서 돈 많이 벌었는데, 이런 생각도 하면서 그래도 이렇게 한 번 내 인생을 생각해 볼 수 있는, 무조건 그냥 복받는다가 아니라 생각을 해볼 수 있는 이 시간을 날마다 갖는 게 아주 중요한 것 같아요.

어떤 집사님 나눔에, 제가 본 부모님은 늘 교회가 우선이었어요. 장로로 교회를 오랫동안 섬기셨는데 나는 그런 아버지를 롤모델로 삼아본 적이 없었어요. 나는 그런 부모님을 따라가지도 못할 거고 대신 반면교사로 삼고 싶은 거는 너무 많으니까 고발하느라고 바빴어요. 그러다가 내 자녀 고난이 너무 크니까 입이 다물어지면서 아, 연약한 우리 아빠가 아브라함이셨고 엄마가 사라였다는 게 인정되는 것 같습니다. 그게 이제 결혼에서도 이어져서 목장에서 남편의 고발을 계속 했었는데 돌아보면 남편이 힘들게 일하고 집에 와서 아이들 돌보면서 놀아주는 일을 항상 했어요. 그런데 그런 얘기는 하나도 안 했어요. 늘 내가 원하는 기준만큼 안 해주는 것만 얘기하는 게 저에겐 익숙했던 길이었고 부모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아요. 교회를 섬기는 엄마의 모습이나 신앙에 대해서는 나누지 않고 나를 챙겨주지 않고 방임했다는 것만 나눴었는데 제가 많이 치우쳐 있었습니다. 아이를 낳고 도와줄 사람이 있는 사람만 너무 부러워했는데 사실 도와줄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내가 하나님을 부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가 이런 나눔을 하는 것은 나의 부서진 성전을 지금 인식했잖아요. 인식하고 수리하려고 이렇게 나누게 된 거잖아요. 이것이 바로 성전 수리입니다. 우리 목장이 성전 수리예요. 아셨습니까? 그래서 내가 얘기하는 순간 이런 모든 죄가 자꾸 힘을 잃어가는 거예요. 목장에서 뭐 시시껍적한, 우리 인생은 시시껍적한 거예요. 나누는 게 어디예요. 교양 있는 얘기만 하면 정화조가 밑에는 끓는데 위에다가 잔디를 깔아놨다고 해서 정화조가 아닌 게 아니잖아요. 퍼가야 되잖아요. 정화조는 잔디를 탁 열고 퍼가야 돼요.


둘째, 발견한 율법책을 읽어야 합니다.

여기에 중요한 이론이 장착이 돼야 되는 거예요. 8절입니다.

대제사장 힐기야가 서기관 사반에게 이르되 내가 여호와의 성전에서 율법책을 발견하였노라 하고 힐기야가 그 책을 사반에게 주니 사반이 읽으니라.

대제사장 힐기야가 성전에서 율법책을 발견했다고 해요. 공사 준비하면서 발견되었겠죠. 그런데 너무 이상하지 않아요, 성전에서. 만화책을 발견할 수는 있어요. 요리책도 발견할 수 있어요. 그 책들은 성전에 있는 게 이상하잖아요, 그죠? 근데 율법책을 발견했다고 해요. 이게 무슨 뜻이에요? 그동안 잊혀졌다는 거예요. 성전에 율법책 안 보이셨어요? 안 보이는 게 당연하게 되었다는 거예요. 없는 줄도 모르고 살았다는 거예요. 그것도 대제사장이 말입니다. 근데 힐기야가 율법책을 누구에게 줍니까? 서기관 사반에게 주는 거예요. 서기관은 히브리어로 소페르인데, 율법학자라는 뜻이에요. 대제사장도 그렇고 이 율법학자에게 율법이 없네요. 그러니 할 일이 없으니까 왕실 최고 행정장관을 하는 거예요. 행정을 하는 거예요. 예. 그래도 모든 나라의 문서를 총괄했어요. 제일 똑똑한 사람 중 하나였어요. 근데 이런 서기관이 율법책을 받고서는 어떻게 합니까? 읽어요. 잘 모르는 책, 처음 보는 책이란 뜻이에요. 유다가 어떤 나라예요?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나라 아닙니까? 그런데 그런 유다의 최고 박사가, 율법학자가 율법책을 몰라요. 예. 율법책이 이렇게까지 다 쓰러졌다는 거예요. 율법책에서 인도를 받는 사람이 없어요. 유다 나라에. 이 나라가 그만큼 부패했어요.

9절, 10절입니다.

서기관 사반이 왕에게 들어가서 보고하여 이르되 왕의 신복들이 성전에서 찾아낸 돈을 쏟아 여호와의 성전을 맡은 감독자의 손에 맡겼나이다 하고 또 서기관 사반이 왕에게 말하여 이르되 제사장 힐기야가 내게 책을 주더이다 하고 사반이 왕의 앞에서 읽으매.

자, 서기관 사반은 아주 책임감이 강한 신복인데요. 왕의 명령대로 수리공사 진행 상황을 보고하면서 성전에서 찾아낸 돈을 감독자에게 맡겼나이다 라는 보고를 먼저 합니다. 그런데 힐기야는 성전에서 율법책을 발견했다고 해요. 신복은 돈을 찾았다고 해요. 한쪽에서는 율법책을 발견했고 한쪽에서는 돈을 찾았다고 해요. 그런데 이게 둘 다 똑같이 찾는다는 같은 단어예요. 그러니까 여기 이때 상황은 말씀은 실종이 됐는데 헌금은 계속 받았다는 거예요. 그런데 성전 수리를 준비하면서 헌금의 원래 목적대로 쓰이도록 돈을 찾았어요. 제자리를 찾았다는 그런 뜻이에요. 헌금이 제자리를 찾으니까 말씀이 임하는 거예요. 돈 찾았다, 율법 찾았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정하신 질서에 따라 있어야 할 자리에 있게 되는 거예요. 이것이 이제 샬롬인데, 그러니까 우리가 개혁이라는 게 가정에서 오랫동안 안 보이다가 발견되는 분들 계시죠. 또 교회에서 오랜만에 발견되는 분들도 계시잖아요. 그러면 그분들 찾기 위해서 우리가 지금 목장에 초대를 해야 되는 거죠. 주님이 정하신 가정의 자리를 잘 지키시고 교회에 마련된 자리에 잘 붙어가시기 바랍니다. 사반이 율법책을 뭐라고 보고 하냐면 책을 주더이다, 율법책을 주더이다가 아니고 그냥 책, 어떤 책 하나의 그냥 책을 주더이다. 사반은 신복이지만 정말 이 책의 가치는 잘 몰랐던 것 같아요. 그냥 힐기야에게서 받고 한 번 읽고 왕 앞에서 두 번째로 읽는데도 그냥 반응이 별로 없어요. 읽는 데서 끝나요. 율법학자가 행정장관을 하니까 율법책을 알아보지 못하고 있네요. 단어도 다 알고 의미도 정확하게 이해했을 텐데 이것이 누구에게 왜 주시는 말씀인지 듣지를 못하는 거예요. 문자적인 의미는 다 이해하는데 그 문자적인 의미를 통해서 하나님이 오늘 나에게 주시는 영적 의미를 알지 못하는 거예요. 한마디로 말씀이 들리지 않는다 이 뜻이에요. 말씀이 들리지 않는 건 단지 귀가 안 들리는 것도,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에요. 말씀이 지금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깨닫지 못하는 거예요. 오늘 나에게 주시는 음성을 깨닫지 못하는 거예요. 하늘의 언어로만 듣는 거예요. 땅의 언어로 해석을 못하는 거예요. 내 사반의 낭독을 듣고 반응하는 한 사람이 딱 있으니 바로 요시야인 거예요. 11절입니다.

왕이 율법책의 말을 듣자 곧 그의 옷을 찢으니라.

직접 읽고 있는 사반은 아무 반응이 없는데 그 말을 들은 요시야는 옷을 찢습니다. 수고는 사반이 하는데 열매는 요시야가 누리는 거죠. 그러면 오늘의 본문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겠는데, 요시야는 사실 태어나면서부터 온 생애를 통해 본인도 모르게 개혁자 인생이 준비되어졌어요. 그리고 단계적으로 개혁을 해왔어요. 그래서 이미 개혁은 시작되었었죠. 그러므로 율법책을 발견하기 위해서 성전 수리를 한 건 아니에요. 5절에 요시야는 감독자의 손에 은을 넘겨주었어요. 이게 모든 주체가 요시야라고 그랬잖아요. 한 사람이 이렇게 확신을 갖고 개혁이 오는 거예요. 은을 넘겨주었는데 감독자는 그 은을 작업자에게 주는 거예요. 그 이유가 7절에 그 작업자가 모두 진실하게 행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넘겨주다, 주다, 은을 넘겨주고 주다, 주게 하다, 넘겨주고 넘겨주어서 그 사람이 다른 사람을 또 주게 하다, 이렇게 히브리어로 나탄인데, 기가 막힌 거는 이 나탄이라는 동사가 8절 10절에 힐기야가 율법책을 사반에게 주었다는 표현에서도 나탄이 사용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성전 수리의 진실되이 행함이, 요시야가 은을 감독자에게 넘겨서 그들이 작업자에게 주어 그들이 목수 미장이에게 주게 했다고 그랬잖아요. 그렇죠? 요시야도 정직히 행하니까 하나님이 요시야에게 율법책을 넘겨 대제사장과 사반에게 주어 그들이 또 다른 백성들에게 주게 한 것이라 이렇게 보면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핵심 일꾼들과 요시야가 한마음으로 진실이 행했다는 거예요. 결과적으로 보면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고 진실이 행했을 때 은이 주어지고 율법책이 주어진 거예요. 그러니까 뭔가 율법책 때문에 성전 수리를 한 건 아닌데, 작업자들이 진실하게 행했다는 게 굉장히 중요한 거예요. 진실하게 수리에 임한 건 감독자 때문에 한 게 아니라 누가 보든 안 보든 하나님 앞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감독자이시기 때문이었어요. 그래서 그들이 너무 진실하기 때문에 회계하지 말라고 했는데, 이거 문자적으로 재정감사하지 말라는 얘기는 아니에요. 요시야도 그 핵심 일꾼들도 서로가 하나님이 감독자이시라는 것을 알아요. 사람에게 보이는 게 아닌데. 그러면 이제 이런 자에게 말씀을 넘겨주어 또 그들이 주게 하시는 거예요. 중요한 거는 하나님 앞에 서 있으면 돈을 진실되게 사용하네요. 오늘 보니까 돈을 찾아가지고 진실되게 성전 수리를 위해서 쓰잖아요. 그래서 옷을 찢는 거는 항상 끝에 돈이 있어요. 돈 씀씀이로 세상과 교회에서도 진실성을 가리는 거예요. 너무 중요한 거예요. 그러니까 비로소 하나님을 찾으니 정직하고, 정직하니 더욱 말씀이 임하고, 더욱 말씀이 임하니 더욱 정직하게 행하고, 이게 다 서로 로테이션으로, 성도의 견인이라고 그래서 51 대 49, 52 대 48 이렇게 차고 차고 올라가는 거죠. 그래서 우리는 이제 말씀을 발견한 말씀을 읽어야 하는데, 그래도 중요한 거는 이렇게 말씀을 읽어야 되는 거예요. 오늘 읽었잖아요. 우리는 어떤 말씀을 읽어야 돼요? 발견한 말씀, 내 삶에서 발견한 말씀이에요. 이것을 읽어야 돼요. 그러니까 그냥 되니다가 힘들어지니까 나한테 꽂히는 말씀이 있게 되잖아요.

우리 삶이 사실 하나님의 말씀과 전혀 어울리지 않아요. 아담 이후 우리 인생은 하나님 말씀이 발견될 수 있는 자리가 아니에요. 말씀이신 우리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친히 오셨어요.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성경을 통해 말씀하시는데, 지금은 기록된 말씀을 주셨어요. 손만 뻗으면 성경을 다 읽을 수 있도록 무거운 책도 필요가 없어요. 핸드폰으로 다 볼 수 있어요. 다 들을 수 있어요. 너무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언제 어디서나 읽을 수 있다는 거, 이것보다 축복은 없어요. 이런 자유와 여유를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셨는데 바로 윗나라에서는 이 성경을 못 보잖아요. 이게 대단한 은혜인 거예요. 우리의 묵상이 옷을 찢는 구속사적 큐티가 되기 위해서는 깨닫든 못 깨닫든 말씀을 읽어야 돼요. 발견한 율법책, 성경을 여러분들이 안 깨달아져도 매일 읽기만 해도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 있고 운동력이 있어서 능력이 되는 거예요. 매일 큐티하겠다고 오늘 한 번 더 결단하시고요. 목장에서 결단을 또 좀 올리시고 예배와 목장을 전심으로, 말씀이 나를 지배하고 살려가는 예배로 서로서로 으쌰으쌰 응원하고 격려하면서 날마다 발견한 율법책을 읽고 읽어내는 큐티를 잘 하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적용 질문이에요.

  • 있어야 할 자리를 잘 지킵니까?

  • 말씀은 내 삶에서 발견됩니까? 내 삶에 자리 잡고 있습니까? 중심에 있습니까? 가장자리에 있습니까?

  • 말씀은 언제 어떻게 읽고 있습니까?

  • 돈과 말씀이 임하기 위해 여러분들이 얼마나 자신을 진실하다고 평가하시겠습니까?

내가 치우치니까 성전이 부서졌는데 부서진 것만 놓고 지금 기도하시면 안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해석이 중요해요. 여러분의 진실의 목적이 사명이에요? 야망이에요?

우선 나를 굉장히 직면하는 질문들을 많이 드렸어요. 여기에서 진실하다고 할 사람이 저부터 누가 있겠어요? 그러니까 다들 실직의 때 말씀이 발견되었다는 나눔이에요. 해달별이 떨어지는 것 같은 큰 사건을 마주하니까 회사 사정이 어려워서 사직까지 하게 됐는데 한순간에 모든 것이 무너지고. 근데 그동안에도 고난이 많았지만 하나님께서 저희 부부에게 불안과 염려 대신 잠잠히 기다리는 인내의 훈련하라는 마음을 한뜻으로 주셨어요. 지난날 공동체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오직 돈을 쫓아 이직을 강행했던 저의 죄를 깊이 회개합니다. 이제는 그 어떤 상황에서도 큐티와 예배의 자리를 사수하겠다고 다짐을 합니다. 요즘은 아침마다 큐티와 기도의 시간을 가지면서 그동안 무심히 지나쳤던 말씀의 단어들이 하나하나 마음의 큰 울림으로 다가오는 은혜를 누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딸을 인내함으로 기다리지 못하고 내 뜻대로 행위했던 죄를 보게 하시고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기다릴 수 있는 믿음을 주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지금 다 없어져서 또 큐티를 열심히 하는데 다시 또 복직되고 다 잘되면 또 멀리멀리 이렇게 되지 마시기를 바라요. 이런 것들이 참 축복이라고, 앗수르가 쳐들어온 게 축복이고.


셋째, 듣고 찢고 물어야 합니다.

읽었으면 세 번째는 듣고 찢고 물어야 돼요. 들었으면 내 마음을 찢고 하나님께 물어야 합니다. 11절입니다.

왕이 율법책의 말을 듣자 곧 그의 옷을 찢으니라.

율법책을 읽기만 한 서기관 사반과 달리 요시야 왕은 자기 옷을 찢어요. 그것도 율법책의 말을 듣자마자 곧 그렇게 해요. 이게 중요해요. 듣는 것과 찢는 것 사이에 시간이 없어요. 변명이 끼어들지를 않아. 계산이 들어올 틈이 없어. 듣자마자 찢는 거예요. 이게 말씀을 진짜로 들은 사람의 모습인 거예요. 나중에 회개하는 거 없어요. 즉각적인 사과와 무릎 꿇음이 이어지는 거죠. 옷을 찢는다는 것은 슬픔과 분노의 강렬한 표시예요. 특히 왕이 자기 옷을 찢는 것은 엄청난 사건 앞에서 체면, 자존심, 권세를 스스로 버리는 거잖아요. 어찌 보면 인간에겐 이 일이 제일 어려운 것 같아요. 그러니까 조금만 올라가도 오픈하기가 어려워지잖아요. 모든 세상의 관습이 찌질하다고 보니까. 그러니까 맨날 나눠놓고는 틀렸다며요. 싸우는 거 아니겠습니까? 유다도 처음에는 며느리를 불태우겠다고 했잖아요. 그러니까 자기 얘기를 하는 데까지는 이게 진짜 어려운 것 같아요. 그런데 여기서 꼭 봐야 할 사람 하나 또 있어요.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에, 예레미야 36장에 보면 여호야김도 아버지와 똑같은 상황을 만나요. 하나님의 말씀이 적힌 두루마리를 받았어요. 그런데 여호야김이 어떻게 합니까? 그 두루마리를 칼로 쭉쭉 잘라서 화롯불에 던져버리는 거예요. 36장 24절에 왕과 그의 신하들이 이 모든 말을 듣고도 두려워하거나 자기들의 옷을 찢지 않았다고 했고, 지금 이게 아버지 요시야와 아들 여호야김이 똑같이 찢었어요. 똑같은 단어 카라예요. 그런데 요시야는 말씀 앞에서 자기 옷을 찢었고 아들 여호야김은 말씀을 찢었잖아요.

왜 말씀을 찢었을까요? 자기가 찢어지기 싫기 때문이죠. 말씀이 자기를 찌르고 들어오니까 자기가 찢어지기 전에 말씀을 먼저 찢어버린 거예요. 뭘 왕의 권위로 자기가 하나님보다 위에 있으니까. 여러분 이게 무서운 거예요. 자기를 안 찢으면 말씀을 찢게 돼요. 둘 중 하나예요. 내가 찢어지든지 말씀을 찢든지. 성경을 구속사적으로 묵상하지 않으면 그냥 지식과 경건의 모양으로만 읽으면 어떻게 됩니까? 이렇게 말씀을 찢게 되면 남편을 찢고 아내를 찢고 자식을 찢고 지체들을 찢는 거예요. 이 말씀 우리 남편이 들어야 하는데, 이거 우리 아들이 알아야 되는데, 저 사람은 지금 이대로 가면 안 되는데, 내가 찢어져야 되는데 맨날 남들을 찢고 있어요. 여호야김은 말씀을 찢었고 우리는 말씀으로 남을 찢어요. 그런데 요시야는요. 말씀이 자기를 찢게 뒀어요. 자기 옷을 찢었어요. 그런데 말씀을 찢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옷을 찢는 행위가 중요한 게 아니라, 왜 옷을 찢느냐, 이게 중요하지 않아요? 12절 13절.

왕이 제사장 힐기야와 사반의 아들 아히감과 미가야의 아들 악볼과 서기관 사반과 왕의 시종 아사야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는 가서 나와 백성과 온 유다를 위하여 이 발견한 책의 말씀에 대하여 여호와께 물으라.

옷을 찢고 나서 요시야가 뭘 해요? 제일 신임 있는 사람들 다섯 명을 선발해서 보냅니다. 어디로 보내죠? 이 발견한 책의 말씀에 대해서 여호와께 물으라. 요시야는 이 문제를 내가 어떻게 해결하지? 안 그래요. 여호와께 물으라고 합니다. 자기가 해결하려고 하지 않고 하나님께 해석을 구하는 거예요. 이게 말씀 앞에서 이게 무슨 뜻이에요?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묻는 거예요. 여러분, 이게 진짜 큐티예요. 구속사적 말씀 묵상이에요. 바로 퀘스천 타임이에요. 묻는 시간이에요. 그런데 대체 요시야는 왜 여호와께 물으라고 할까요? 13절 계속 봅니다.

우리 조상들이 이 책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며 이 책에 우리를 위하여 기록된 모든 것을 행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내리신 진노가 크도다.

이렇게 물어야 하는 이유가 뭔가 하면 진노가 크기 때문이에요. 이 진노가 왜 왔다고 그래요? 우리 조상들이 이 책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였기 때문에 진노를 내리신 것이죠. 이 책에 우리를 위해 기록된 모든 것을 행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에 진노를 내리신 것이라고 깨달았어요. 고백했어요. 아마 힐기야가 발견한 율법책은 모세 5경 중에서 신명기 28장과 같이 하나님을 배반했을 때의 심판과 저주를 기록한 말씀, 이런 걸 읽어줬다는 거예요. 딱 거기 나오는 내용이거든요. 요시야는 이 말씀을 듣고 바로 옳습니다, 아멘 한 거예요. 우리 죄악으로 이렇게 됐다. 그리고 그 말씀으로 지금 자기 삶의 현실을 읽어 내려간 거예요. 해석한 것이죠. 뭐라고 해석했어요? 이거는 진노다. 인정하기 싫지만 말씀의 진단이니까 받아들인 거예요. 그리고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니까, 이 진노가 임했는데 여호와께 물어야 되는 거예요. 진노가 임했는데 분노하는 게 아니고 여호와께 묻고자 하는 거예요. 그래서 이 말씀을 여호와께 묻는다는 거, 옷을 찢었다는 거, 더 큰 회개로 나가게 되는 거죠. 그래서 말씀으로 내 삶을 해석하고 내 삶에 내린 진노를 깨닫고 그 진노가 죄의 대가임을 인정하고 죄를 고백하는 거, 그리고 우리가 어찌할꼬 하면 하나님께 묻는 거, 이것이 바로 말씀대로 하는 회개예요. 그런 생각을 해보니까 정직히 행했다고 했지만 성경을 모르니까 정직의 깊이가 너무 초라한 거예요.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구나. 말씀 앞에 비추어 보니 너무나 부끄러워. 옷을 찢을 수밖에 없는 거예요. 회개할 것이 너무나도 많았어요. 자기의 죄뿐만 아니라 할아버지. 이게 있잖아요. 이게 말씀 임하지 않으면 할아버지 므낫세가 55년이나 장기 집권했는데 얼마나 훌륭해요. 우상을 그대로 따라가죠. 아버지는 너무 불쌍해. 2년 만에 살해당했어. 이 상처 속에서 그냥 원망을 할 텐데, 할아버지 아버지의 죄가 다 내 죄라는 거, 회개하며 애통했을 거예요. 그리고 이제 요시야는 아버지도 악했지만 아들들도 다 너무 악해요. 모든 아들들이 전부 악해요. 세 아들, 네 아들. 그래서 좌우로 치우치지 않았어요. 자기가 성전 수리하면 의로워서 다른 사람들 보면 정죄하기가 쉽잖아요. 그렇게 의로워질 즈음에 율법책의 말씀을 들었는데 이 사람이 택지하니까 한 번을 읽어줘도 딱 회개를 하게 되니까, 성전 수리하는 거예요.

설교, 간증, 기도, 양육 수없이 들려줘도 안 들리는 성도가 너무 많잖아요. 어떤 분은 여기 처음 왔을 때는 설교가 하나도 안 들려서 설교 시간마다 다른 설교 들었어요. 핸드폰으로. 와이프하고 똑같이. 지금도 설교 시간에 핸드폰 보는 분들 많아요. 주식 보세요. 그래도 오시는 것이 어떻게 해요. 와서 보세요. 어느 순간 말씀을 계속 듣다 보니까 말씀이 안 들렸는데 그래도 목사님의 진심이 좀 느껴졌어요. 그래서 이제 뇌재를 봐야 된다는 기초를 깨닫는 순간 설교를 듣게 되었다고 해요. 또 어떤 목자님은 목사님 말씀이 설교 시간에는 안 들린다. 그런데 집에 가서 다시 정리하면 너무 많은 정보들이 그곳에 있더라. 그러면서 우리는 언론의 자유가 있어서 맨날 저를 씹어요. 그래도 이런 얘기를 해주는 게 어디에요. 너무 감사하게 생각해요. 또 한 분은 목자님이에요. 내 인생에 가장 큰 결함은 묻지를 않는 것. 왠지 부끄럽고 창피하고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 같고 물어도 별 답이 없을 것 같고 내 생각과 다르면 괜히 불쾌하고 괜히 물었다고 자책하며 내 생각이 옳다고 주장하는, 익숙한 길에서 큰 결함이다. 이렇게 또 고백해주는 게 어디에요. 저는 이런 거 할 때마다 너무 고마워요. 이런 얘기 솔직하게 해주는 사람이 최고 최고. 그래서 이제는 회개하고 하나님께 묻고 가려고 한다고. 바로 이 회개의 마음으로 옷을 찢었기 때문에 요시야가 구속사적 큐티의 모델이 된 거예요. 회개가 빠진 묵상은 알맹이 없는 껍데기예요. 내가 나를 만족하게 해서 큐티하는 게 아니에요. 우리 큐티인의 구속사적인 본문 해설의 핵심이 회개에 있는 거예요. 하나님 말씀 앞에서 내 자신을 보면 회개할 수밖에 없어요. 회개할 것밖에 없는 인생인데 회개하는 거 너무 싫어해요. 우린 자기 옷도 찢기 싫어하고 자기 마음을 찢기는 더욱 불가능해요. 자기 마음을 안 찢으니까 하는 일이 남을 판단하는 거예요. 남의 마음 찢기에 바빠요. 그래서 이래도 하여튼 이런 거를 깨달으시면 좋아요. 예수님이 우리에게 오신 거예요. 이렇게 질긴 우리 죄 때문에 주님의 몸이 찢기셨어요. 우리가 받아야 될 진노를 예수님께서 다 자기 몸으로 받으셨어요. 그 은혜로 성소의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찢어졌어요. 그래서 우리가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는데, 요시야는 옷을 찢은 후에 더욱 철저하고 대대적인 개혁의 단행을 시도하게 되었어요. 그럼 여러분, 오늘 우리가 찢을 것은 남이 아니에요. 내 옷이 아니에요. 내 의예요. 내 변명이에요. 내 억울함이에요. 내가 옳다는 확신이에요. 내 자존심이에요. 이와 같이 겹겹이 입고 있는 우리의 옷을 찢고 주님을 따라 나아간다면 주님이 우리를 받으시고 살리시고 끝내 거룩과 구원으로 인도하실 줄을 믿습니다.

적용 질문이에요.

  • 말씀을 들을 때 내 세상적 가치관을 찢습니까?

  • 옳고 그름으로 다른 사람들을 판단합니까?

  • 내 삶에 내린 진노 같은 일은 무엇이에요? 그것 때문에 분노합니까? 하나님께 묻습니까?

그러니까 해석이 잘되면 해결이 되는데, 부서진 성전 붙잡고 언제 이거 수리해주나,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안 되는 거예요. 내가 얼마나 치우쳐 있는가 이걸 알아야 되는 거예요. 내 새끼, 그냥 내 고향밖에 모르니까 나라가 찢어지잖아요. 그죠? 우리가 같은 교회에서도 찢어지고 나라에서도 찢어지고, 믿는 한 사람 요시야가 나오게 될 줄 믿습니다.

우리 한 선생님이 나눔에, 활달했던 둘째가 고등학교부터 무기력해져가지고 대학 졸업할 때까지 이어졌는데 인서울대학 들어갔는데도 거리가 멀다고 인천에 있는 대학을 선택할 정도로 움직이는 걸 싫어했어요. 그래서 인서울대학이 어디에요? 내가 아까 이렇게 물어보니까 중앙대라잖아요. 거기를 안 가고 인천에 대학을 갔대. 공부에도 흥미를 잃었는데 신기하게도 모든 걸 다 안 하는데 교회만 열심히 나오고 모든 수련회에 다 참석하고 왜 이렇게 교회를 좋아하는지 자기도 모르겠다고, 송도에서 판교까지 대중교통으로 2시간 정도 걸리는데 큐페 준비 모임, 티티 준비 모임, 큐페, 교사, 엠티 등 다 참석하고 월요 큐티 모임, 수요 예배도 가고 양육도 받고, 양육이 3월에 시작하면 가다 보면 꼭 중간고사 기간과 겹치는데 한 번 정도 빠져서 시험 준비하면 너무 좋을 텐데 공부가 싫은 건지 교회가 좋은 건지 안 빠지고 참석합니다. 공부에는 재미를 못 붙이다 보니 학점도 안 좋고 한 학기 겨우 다녀서 작년 8월에 졸업했는데 대학 동안 아무런 자격증도 없이 졸업을 했다는 거예요. 너무 한심했는데 삼성 SW 아카데미 1년 과정 수료하면 IT 쪽으로 취업이 될 거야 어렵게 설득해서 시험을 보게 했는데 멀어졌습니다.

그래서 작년 10월에 인천상공회에서 주관으로 삼성보다는 6개월 과정으로 코딩 로봇 관련 교육과정이 새로 오픈했고 지원자가 부족해서 미달로 합격을 했대요. 처음으로 미달이 돼가지고 합격을 했는데 교육을 받고 4월에 수료를 했는데 2기 과정을 새로 모집했는데 이번에는 경쟁률이 3 대 1이 넘었대요. 못 붙을 뻔했죠. 그죠. 그래서 1기에 너무 운 좋게 합격해가지고 수료증으로 로봇 재활을 취업을 했는데 집에서 걸어서 18분 거리예요. 이건 뭐 진짜, 예배 참석하고 온갖 교회 행사에 참석하고 양육 다 받고 시험 공부 기간에도 양육 빠지지 않은 것 밖에 없었는데 이렇게 취업하는 모습을 보면서, 지금 22살, 23살밖에 안 됐어요. 결국은 공부 하나도 안 했고 교회만 왔는데, 뭐야 학교 졸업하고 취직도 하고 집에서 가까운 데에 걸어 다니고. 회개가 너무 됐어요.

아버지 하나님께서 예배 자리를 귀하게 보셔서, 이렇게 늘 목사님이 예배 자리를 지켜야 한다고 말씀하시는데 그게 별거 아닌 것처럼 들릴 수 있는데, 자녀들에게 좋은 부모는 예배의 자리를 지키는 모습을 보여주는 부모가 최고의 부모라고 생각합니다. 그럼 여러분들께서 나도 보여주고 있는데, 히스기야처럼 수준이 높아서 55년 있다가 돌아올 거예요. 근데 므낫세는 수준이 낮아서 2년 만에 응답. 이분 굉장히 수준이 낮네요. 시간적으로 봐서 손해 보는 것 같죠. 우리 인생이 참 짧으니까 하나님이 들어주시는 것이 있어요. 우리 청년들은 이러니까 결국은 취직도 잘 되고 오늘 아까 강 집사님은 빚도 갚았고 임대주택도 다 됐고 그냥 안 되는 게 없어요. 결혼도 잘하고 이런 아이들은 결혼도 잘해. 그리고 이혼도 아무도 안 해. 최고 아니에요? 예배가 최고 맞죠?